대리점에 대한 감사와 공정거래법 위반 문제

● 공정거래법 이해와 사례 ⑦

"글로벌 의료기기 기업의 준법 감시, 운용의 묘 찾아야"
대리점에 대한 감사와 공정거래법 위반 문제 

▲ 김 현 희
법률사무소 다감

'대리점 감사'에 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주로 외국계 의료기기업체에서 두고 있는 제도이다. 이 경우 '감사'는 회계 감사보다는 준법 감사의 성격을 띤다. 글로벌 의료기기 업체의 경우 세계 각지에서의 부패 스캔들로 인해 회사의 계속적 운영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엄격한 준법감시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준법 감시조직은 각국의 자회사 경영진으로부터 독립된 보고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준법감시 조직 내에 내사 혹은 감사를 담당하는 조직을 두기도 한다.

대리점 감사는 글로벌 의료기기 업체들이 각국 자회사의 의료기기 관련 법령 준수를 담보하는 것을 넘어서 대리점의 법령 준수를 담보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이다. 의료기기 업체들은 대부분 본사보다 조직과 규모가 영세한 대리점이 법령 준수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주기적인 준법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실제 이행여부를 점검하기 위해 대리점 감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대리점 감사 방법은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미리 조직 내에 확립된 원칙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 보통이다. 각국 자회사가 수집한 대내외 정보를 바탕으로 준법 관련 위험도를 사전에 검토하여 위험도가 높은 대리점을 추려 그 중 몇 곳을 임의로 선정하여 조사(샘플 체크)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문제는 대리점의 의료기기법이나 공정거래법 등 법령 준수를 담보하기 위해 행해지는 대리점 감사가 국내 공정거래법 하에서는 오히려 법령 위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감사행위 자체의 공정거래법 위반 문제

대리점에 대한 감사는 먼저 공정위 등 규제기관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제도이다. 사기업은 물론이요 글로벌 의료기기 업체의 운영방식에 관해 알지 못하는 규제기관의 눈에는 대리점 감사 자체가 ‘갑질’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애물이다. 

국내 대리점에 대한 감사가 실제로 이루어지는 상황을 살펴보자. 먼저 글로벌 기업의 준법감시조직(주로 해외에 소재하고 있다)에서 감사 대상과 일자 등이 정해지면 국내 준법감시 담당자는 대리점과의 일정 조율 등을 담당하게 된다. 정해진 일자에 글로벌 준법감시조직 산하의 감사 조직의 담당자(주로 외국인)가 국내 입국해서 대리점을 방문하게 된다. 감사 담당자는 이 때 대리점이 준비한 자료들을 살펴보고 담당자 인터뷰 등을 통해 실제 법령 위반의 위험이 있는지 여부를 살펴보게 된다. 그런데 대부분 의료기기법 등 관련 법령의 위반 위험은 돈의 흐름을 보아야 살펴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즉, 물품 대금이나 용역 대금의 형태로 오고가는 현금이 의료기관 등에 불법 리베이트 자금으로 흘러 들어가지는 않았는지, 용처 불명의 자금이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는 것이 감사활동의 핵심이 되게 된다.

그러나 한편, 대리점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측면이 있다. 대리점은 나름 자신들의 방식으로 법령을 준수하면서 영업을 하고 있는데, 공급업체(본사)가 나서서 법령 위반의 위험이 있다고 '낙인'을 찍고 여러가지 영업 관련 자료를 보여달라고 하는데 달가울 리 없다. 게다가 감사 담당자는 대부분 글로벌 조직에서 각국 자회사 구성원들과 대리점 간의 유착관계를 우려하여 다른 나라 출신을 파견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법이나 관행, 정서에 관해 어두운 외국인이 와서 대리점의 금융계좌 거래자료를 달라고 해서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묻는다면 없던 본사에 없던 반감도 생기기 마련이다.

이러한 본사의 대리점 감사는 우선 공정거래법이 금지하는 불공정거래행위 유형 중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 그 중 '경영간섭'에 해당될 수 있다. 공정위의 「계속적 재판매거래등에 있어서의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 세부유형 지정고시」(공정거래위원회고시 제2017-6호, 2017. 6. 2., 일부개정) 에 의하면, 합리적 이유 없이 공급업자가 판매업자의 거래처 현황, 매출 내역, 자금출납 내역 등 판매업자의 사업상 비밀에 해당하는 정보를 제공하도록 요구하는 행위(제8조 제1항 제3호)를 경영활동 간섭행위로 보아 금지하고 있다.

감사와 결합된 대리점 계약 해지 관련 문제

대리점 감사 결과 대리점의 법령 위반 사실이 밝혀지는 경우, 대부분의 경우 글로벌 조직 본사에서 해당 국가 지사에 대리점 계약을 해지하도록 할 것이다. 다수의 글로벌 기업의 경우 대리점 계약서에 의료기기법 등 관련 법령 위반 혹은 반부패 관련 의무 불이행의 경우 계약 해지가 가능하다는 문구를 두는 경우가 많다. 대리점의 의무위반여부가 명백하다면 해지의 적정성 여부에 관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문제는 법령 위반으로 인한 대리점 계약 해지가 아닌, 감사 제도 자체 대한 대리점의 저항에 글로벌 조직이 '해지'로 맞불을 놓는 경우에 발생하게 된다. 대리점 계약서에 감사 관련 의무불이행시 계약 해지가 가능하다고 기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리점 계약상에 그러한 명시적 문구가 있다고 해서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한 의문이 해소되지는 않는다. 법령 위반 여부가 밝혀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대리점이 영업 관련 기밀 정보 유출 등을 이유로 감사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대리점 계약을 해지하려 한다면 공정거래법 상 불공정거래 행위 중 '거래거절'에 해당하거나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의 또다른 유형인 '불이익 제공행위'에 해당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불공정거래행위 중 거래거절은 '특정사업자에 대한 거래를 중단하거나 거래하는 상품 또는 용역의 수량이나 내용을 현저히 제한하는 행위'를 의미하는데, 대리점의 감사 거부를 이유로 계약 해지를 하였는데 경쟁제한성이 초래된다면 거래거절에 해당될 수 있다.

또한 일반적으로 공급업체(본사)는 대리점에 대하여 거래상 지위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경우에는 경쟁제한성 여부를 따지지 않고 거래상 지위 남용(불이익제공)이 문제될 수 있다. 위에서 살펴본 공정위의 세부유형 지정고시는 공급업자가 '상품의 공급 또는 영업의 지원 등을 부당하게 중단 또는 거절하거나 현저히 제한하는 행위'(제7조 제3항 제1호)를 하는 경우 '불이익 제공행위'로 보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약칭: 공정거래법)
[시행 2020. 8. 12.] [법률 제16998호, 2020. 2. 11., 타법개정

제23조(불공정거래행위의 금지) ①사업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로서 공정한 거래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행위(이하 "不公正去來行爲"라 한다)를 하거나, 계열회사 또는 다른 사업자로 하여금 이를 행하도록 하여서는 아니된다.
1. 부당하게 거래를 거절하거나 거래의 상대방을 차별하여 취급하는 행위
4. 자기의 거래상의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하여 상대방과 거래하는 행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시행령 [별표 1의2] <개정 2017. 9. 29.>
불공정거래행위의 유형 및 기준(제36조제1항관련)

1. 거래거절
법 제23조(불공정거래행위의 금지)제1항제1호 전단에서 "부당하게 거래를 거절하는 행위"라 함은 다음 각목의 1에 해당하는 행위를 말한다.
나. 기타의 거래거절
부당하게 특정사업자에 대하여 거래의 개시를 거절하거나 계속적인 거래관계에 있는 특정사업자에 대하여 거래를 중단하거나 거래하는 상품 또는 용역의 수량이나 내용을 현저히 제한하는 행위

계속적 재판매거래등에 있어서의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 세부유형 지정고시
[시행 2017. 6. 2.] [공정거래위원회고시 제2017-6호, 2017. 6. 2., 일부개정]

제7조 (불이익 제공행위의 금지) ③ 공급업자는 거래 과정에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통해 판매업자에게 불이익을 주어서는 아니된다.
1. 상품의 공급 또는 영업의 지원 등을 부당하게 중단 또는 거절하거나 현저히 제한하는 행위
제8조 (경영활동 간섭 금지) ① 공급업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
3. 합리적 이유 없이 판매업자의 거래처 현황, 매출 내역, 자금출납 내역 등 판매업자의 사업상 비밀에 해당하는 정보를 제공하도록 요구하는 행위

대리점 감사제도의 합리적 운영방안

이처럼 준법을 촉진하고 담보하기 위해 운영되는 대리점 감사제도가 글로벌 기업의 자회사인 국내 의료기기법인에게는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를 불러일으키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 실무 담당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먼저, 글로벌 기업에서 국내 자회사만 대리점 감사제도에서 전면적인 면제를 주장하기는 어려울것이다. 제도 자체는 운영하되 국내 법령상의 제한을 반영하여 운영하도록 안내해야 한다. 실무담당자가 해외 본사에 국내 공정거래법 위반 위험에 관해 적절한 설명과 주의사항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갑을 관련 규제나 대리점 관련 규제는 다른 나라에서는 살펴보기 힘든 우리나라에 특유한 규제라고 볼 수 있다. 국내 실무담당자(주로 준법감시인이나 법무담당자일 것이다)로서는 국내 사정에 어두운 글로벌 준법감시조직에 국내 법령상의 특이점과 대리점 감사 운영에 있어 공정거래법 등 위반 위험에 관해 알리고 이해를 도와야 할 것이다. 

실무적으로는 대리점 감사작업에 있어서 금융거래자료에 관해 대리점이 민감한 영업기밀로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에 대해 일정한 프로토콜을 정해 둘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대리점이 공급업체(혹은 글로벌 본사의 조직)의 직접 열람을 거부한다면, 금융거래 자료나 거래처 관련 자료, 판매액 등 영업 관련 자료는 해당 자료의 유출 혹은 유용 위험이 낮은 법무법인이나 회계법인 등 제3의 독립된 기관으로 하여금 살펴보도록 하고 보고서를 받는 형태로 운영하는 것도 한 가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에서 공정위 등 규제기관이 대리점 감사에 관해 조사를 하게 될 경우의 대응에 있어 실무담당자의 역할이 있다. 실무담당자는 조사관에게 글로벌 조직의 운영방식이나 감사에 관련된 제반 프로세스나 취지에 관해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대리점 감사가 '합리적 이유가 있는' 제도임을 이해시켜 규제기관의 오해를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

해외에서 대리점을 감사하기 위해 파견된 감사담당자의 감사활동에 관해서도 국내의 실무담당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내 법령이나 정서, 언어에 모두 어두운 외국인이 대리점의 감정을 필요 이상으로 거슬러 새로운 공정거래법 위반 문제를 불러 일으킬 위험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전에 감사담당자에게 감사작업시 유의할 사항을 상세히 안내하고, 대리점에게도 양해를 구하고 원활한 의사소통을 돕는다면 서로 간에 불필요한 오해나 대치국면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 19가 창궐하고 있는 현재로서는 글로벌 조직의 감사인력 파견이나 대리점 감사활동 자체가 무기한 연기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백신의 보급과 함께 코로나 19가 어느 정도 진정되면 글로벌 의료기기 업체의 대리점 감사 활동은 다시 활발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대리점 감사가 재개된다면 위에서 살펴본 유의점을 되새기고 다수의 이해관계자를 설득하고 중재하는 운용의 묘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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