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임상시험 관리체계 강화의 중요성

● 의료기기산업 미래를 향한 연속 제언 ④

"신기술 접목 의료기기 늘며 임상시험 수요 증가 추세"
의료기기 임상시험 관리체계 강화의 중요성

▲편 웅 범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산학협력중점교수

필자는 우리나라 의료기기산업 발전을 위해 산업계와 정부기관 모두가 지금까지 잘해오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렇기에, 특히 의료기기 규제개선에 대한 제언은 늘 조심스럽기도 하고 별반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다만, 산업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필수로 요구되는 정부 기관의 조직 보강이나 신설에 대해서는 기탄없이 견해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의료기기 산업의 특성과 규제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어설픈 전문가들의 잘못된 지적으로 인해 정부는 불필요한 행정력과 예산을 낭비했을 뿐만 아니라 종국적으로 의료기기 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문제들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의료기기 산업에 대해 가장 전문성이 높은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의료기기 규제개선을 주도적으로 할 수 밖에 없다. 
협회에서 마련한 ‘의료기기산업 미래를 향한 연속 제언’을 통해 우리 산업의 현재 위상과 상황을 좀 더 정확하게 바라보는 기회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의 위치를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미래발전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산업 변화 맞춰 정부조직 보강‧신설해야
우리 의료기기 산업은 선진국에 비해 비록 수십 년이 뒤진 후발주자로 출발했지만, 신기술이 출현하는 국면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세계 수준으로 도약하는 역량을 보여주며 꾸준히 발전해 오고 있다. 
우리나라 신기술 개발은 정부의 R&D 정책 주도로 활발하게 이뤄져 왔으며, 상대적으로 미미했던 민간부문의 투자는 이제야 태동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분석된다. 민간투자 비중을 확대시키는 것이 중요한 숙제다. 앞으로 의료기기 규제완화 요구는 의료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기존 산업계보다 규제 이해수준이 비교적 낮은 R&D 계층에서 드셀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은 경제 상황과 관계없이 강력한 정책 의지에 의해 매년 증액돼왔다. 최근 3년 동안 연속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이며, 2021년도는 총 27조4000억원이 배정됐다. 다보스 포럼에서 ‘제4차 산업혁명’이 화두로 떠오른 직후부터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과감하게 집중 투자를 해오고 있다. 신기술 의료기기와 신약 개발을 위한 바이오헬스 분야에 대한 투자가 핵심적인 R&D 정책이라는 점은 명확하다. 
건강을 잃으면 삶의 모든 것을 잃는다. 4차산업혁명의 요소기술들이 미래시장을 지배하고 경제성이 높다 한들 인류를 질병으로부터 구원하는데 기여할 수 없다면 무슨 커다란 의미가 있는가! 신기술들이 의료기술 발전을 위해 적극 도입돼야 하며, 의료계는 정체된 진단 및 치료분야의 도약을 위해 새로운 첨단기술의 활용에 적극적이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정부의 R&D 투자 덕분에 신생기업들이 국내의 유수한 의료기관과 협업해 신기술 의료기기를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성과를 보이고 세계 최고 수준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식약처는 디지털치료기기, 인공지능 진단소프트웨어와 3D 프린팅 의료기기 등 4차산업혁명 첨단기술 제품에 대한 임상시험과 인허가 가이드라인을 선제적으로 마련하고 의료용 소프트웨어 품목을 90개로 세분화하고 분류를 신설하는 ‘의료기기 품목 및 품목별 등급에 관한 규정’을 개정함으로써 관련 분야의 산업을 살렸다는 감사와 존경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한 산업적 파급효과를 객관적으로 측량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최첨단 디지털헬스케어 산업 발전에 지대한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최소한의 인력만으로 이룬 성과로서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는 미국 FDA도 한국 식약처의 가르침을 요청한 바 있다. 더불어 한국은 의료기기 규제의 국제조화기구인 IMDRF(International Medical Device Regulator Forum;국제의료기기규제당국자포럼) 의장국으로 선임돼 식약처가 2021년부터 국제 의료기기 규제정책을 수립하고 전세계 규제기관을 대표하는 맹주로서 활동하게 됐다. 
지금처럼 그대로 각자의 영역에서 제 역할만 충실히 해준다면, 국내 의료기기 산업이 세계시장을 주도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나라는 유래없이 독특한 환경에 놓여 있기 때문에, 이제는 과거처럼 미국, 유럽, 일본 등 외국의 사례를 참조해 편안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벗어난 것이 확실하다고 판단된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스스로 등불을 밝혀 독자적인 해결방안을 찾아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외롭고 험난한 상황에 처해 있다. 과거에는 미국과 유럽연합만이 새로운 의료기기 규격을 창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우리도 새로운 규격을 만드는 대열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근래에 3D 프린팅 의료기기와 인공지능 진단지원시스템 그리고 디지털치료기기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식약처는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세계 최초로 가이드라인을 마련함으로써 의료시장 진출의 돌파구를 찾지 못해 위기에 처한 국내 산업생태계를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쳐가는 식약처
그러나 이러한 식약처는 매번 볼 때마다 얼굴은 피로한 기색이 역력하고 만성적인 수면부족으로 지쳐가고 있다. 과연 언제까지 이런 상태로 버틸 수 있을지 걱정된다. 현 시점에서는 규제개선을 위한 제언보다 조직의 규모를 합리적인 수준까지 끌어올려 업무부담을 적정한 준위로 맞추는 일이 최우선 당면과제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식약처와 같은 규제기관의 인력이 증원되면 관련 산업 발전에 저해가 된다는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의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의료기기 분야에서는 그렇지 않다. 충분한 전문인력을 확보해 식약처의 전문성이 고도화될수록 심사과정에서 발생하는 애로사항과 민원인의 부담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신기술이 적용된 새로운 의료기기에 대한 맞춤형 제도가 적시에 마련됨으로써 국내 의료기기산업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이것이 엄격한 수준으로 안전성과 유효성이 요구되는 규제산업이 갖는 고유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2020년에는 다각도의 노력끝에 식약처 의료기기심사부에 디지털헬스기기TF팀이 신설됐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정부 R&D 집중적인 투자로 인해 국내 IT기업들이 대거 의료기기산업으로 진입하고 있는 시점에서 식약처가 안게 될 업무부담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게 됐고 디지털헬스산업계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인 일이다.
2021년에는 의료기기 임상시험 전담부서의 설치가 절실하다. 아직까지 의료기기 임상시험만 집중해서 심사할 수 있는 전담부서가 설치되지 않은 것은 우려스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의료기기 관리제도의 근간은 의료기기 해당여부 및 품목분류와 더불어 임상시험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의 의료기기 R&D 과제에서는 연구결과에 대한 사업화 성과를 중시하는 경향에 따라 의료기관이 핵심적인 위상을 갖는다. 기존기술의 고도화보다는 품목허가를 위해 임상시험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신기술이 적용된 새로운 의료기기 개발과 신시장 창출에 정부 의료기기 R&D 투자가 치중되기 때문에, 정부는 과제의 수행체계에서 임상시험을 수행할 의료기관을 필수 참여기관이나 주관기관으로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사들이 의료기기 연구개발 과제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연구결과물에 대한 임상시험이 활성화되고 있으며, 가까운 장래에 IT기술과 접목된 디지털헬스케어 등 신개발 의료기기 임상시험의 승인 신청이 폭주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미 작년 11월에 범부처전주기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단은 규제정보 제공 및 교육 그리고 신의료기술평가 컨설팅 서비스 연계를 위해 한국의료기기안전정보원 및 한국보건의료연구원과 MOU를 체결한 바 있고, 식약처에도 과제를 수행하는 연구팀을 위한 규제교육을 요청한 바 있다. 

의료기기 임상시험 전담조직이 필요한 이유
식약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은 정부 R&D의 투자방향과 추세를 파악해 신기술 적용 의료기기에 대한 임상시험 심사를 실무적 차원에서 준비하고 선제적으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대비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가이드라인 제정만으로는 급증할 임상시험 수요를 감당하는 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민간영역에서는 임상시험계획승인 면제범위 확대, 혁신의료기기 대상 컨설팅 지원 프로그램, 정기점검 강화, IRB 권한ㆍ책임ㆍ심사방법 및 절차 등에 대한 규정 마련, IRB 관리 강화 및 IRB 전문성 강화 등 상대적으로 지협적인 문제만 지적하는 실정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민간 전문가들로부터 임상시험 제도개선에 관한 실효성있는 제안이나 도움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의료기기심사부는 2020년 3월 발간한 ‘의료기기 임상시험 길라잡이’에서 이미 우리나라의 의료기기 임상시험 수요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급속하게 증가될 것이며, 임상시험을 위한 인프라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국내 의료기기 임상시험 인프라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로는 의료기기 임상시험에 대한 정보의 부족, 전문가 집단의 부족 그리고 제도적 지원의 부족을 지적하고 있다. 결국, 아직까지는 민원인들이 임상시험기관과 협력해 설계ㆍ작성한 임상시험계획을 식약처의 입장에서 신뢰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또, 안전성과 유효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임상시험이 수행되기 위해서는 식약처의 주도적인 역할이 필요하고 그에 따른 승인심사의 부담이 높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우수한 의료기기를 개발해서 허가를 받기위한 임상시험을 진행하려는 자를 위해 다양한 의료기기에 대해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보다 체계적으로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전문교육기관의 설립ㆍ운용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의료기기심사부는 그 동안의 심사경험을 토대로 의료기기 임상시험에 대해 고도화된 다양한 관리 방안뿐만 아니라 의료기기 임상시험을 위한 제도적 지원 방안에 대한 나름의 전략도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의료기기 관리제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임상시험은 신기술이 적용된 새로운 의료기기 개발과 신시장 창출을 통해 우리나라 의료기기산업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으로 작용할 것이며, 의료기기 임상시험 자체만으로도 전망이 밝은 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2021년부터는 의료기기 임상시험 전담부서의 필요성이 널리 공감되고 신설되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필자의 견해를 여러분들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협회보의 귀중한 한켠을 할애해 주신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에 심심한 감사를 전한다.

범부처전주기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단은 지난해 11월 규제정보 제공 및 교육 그리고 신의료기술평가 컨설팅 서비스 연계를 위해 한국의료기기안전정보원(위) 및 한국보건의료연구원과 MOU를 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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