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악화 방지 등 순기능 기대했지만 리베이트 수단으로 변질

● 공정거래법 이해와 사례⑤ 

'병원 간 병상 공유' , 병상거래 행위는 불법일까?
재정 악화 방지 등 순기능 기대했지만 리베이트 수단으로 변질  

▲ 김 현 희

법률사무소 다감 변호사

의료법 38조 특수의료장비 설치·운영 기준

‘병상 거래’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의료기기업계 종사자, 특히 영상 진단 장비를 취급하는 이들은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병원의 병상이 거래된다는 것을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실제로 그러한 일은 일어나고 있다. 병원의 병상을 돈을 주고 산다는 것인데 물리적으로 병상이 이동하는 것은 아니고 정확히는 대가를 주고 다른 병원과 공동으로 이용하는 병상을 확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거래가 발생하는 이유는 고가의 의료기기인 MRI나 CT 등 장비를 구입하려면 병원이 일정 규모 이상의 병상을 갖추어야 하는 규제 때문이다. 의료법 제38조는 의료기관이 보건복지부가 고시하는 특수의료장비를 설치·운영하려면 시·군·구청장에게 등록하고 설치 운영기준에 맞게 설치 운영하도록 하고 있다.

그에 따라 MRI, CT, 맘모그라피(mammography), PET, PET-CT 등 11종류 의료장비가 특수의료장비로 지정되어 있고, 의료법 제38조의 하위법령인 특수의료장비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칙(보건복지부령)에서 특수의료장비의 설치 운영 관련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위 특수의료장비 중 MRI(자기공영영상 촬영장치) 및 CT(전산화단층촬영장치)의 경우, 설치에 일정한 시설기준이 적용된다. MRI는 200병상 이상인 의료기관만 설치가 가능하고, CT는 시지역은 200병상 이상, 군지역의 경우 100병상 이상일 경우에만 설치 가능하다(종합병원의 경우에는 CT 관련 설치 기준 적용받지 않음). 설치 가능 병상보다 적은 수의 병상을 보유한 의료기관은 다른 의료기관과 해당 특수의료장비를 공동활용하여야 하고 공동활용동의서를 받아서 제출하여야만 설치가 가능하게 된다.

병상 공유 대가로 암암리에 금전 오가

고가의 특수의료 장비 도입으로 의료기관의 재정이 악화되거나, 구입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무리한 검사를 하여 환자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폐해를 막고자 만든 규정이다. 그런데 위와 같은 규정으로 인해 병원 간에 암암리에 병상 공동활용 동의의 대가로 금전이 오가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병상당 100~15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2009년에는 돈을 받고 특수의료장비 등록을 도운 보건소직원과 구청직원이 수뢰 혐의로 입건되었고, 병상 수거래를 알선하고 1억원을 받은 혐의로 모병원 소속 방사선사가 입건되기도 했다. 최근에도 어느 기사에 의하면 의료장비 판매업체가 장비 구입 병원이 공동활용 동의를 해주는 병원에 지급할 금전을 대납해주는 형태의 리베이트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병상 수 거래를 알선하는 브로커가 돈을 받고서 병상 확보를 해주지 않았다며 사기죄로 형사고소를 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병상거래는 현행 법령상 허용되는 것일까.

의료법이나 특수의료장비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칙은 설치에 관한 규정을 위반할 경우 시정명령이 내려질 수 있고 시정명령을 위반하면 처벌된다고 규정하고는 있지만, 공동활용 동의 관련(병상 거래) 금전거래를 직접 금지하거나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는 않다. 그에 따라, 병상 거래 관련해서 금전을 받은 이가 공무원이거나 병원 소속일 경우에 수뢰죄나 배임수재 등으로 처벌이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규제 실효성 낮아, 다른 방안 강구할 때

아직까지 보건복지부나 공정위나 검찰이 단속 활동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의료기기 판매업체가 자신들의 비용으로 병상을 확보해서 특수의료장비에 해당하는 의료기기를 구입하려는 중소규모 병원에게 제공하고 있다면, 의료기기법이 금지하는 경제적 이익제공(리베이트) 및 공정거래법 위반(불공정 거래행위 유형 중 부당 고객유인)에 해당될 수 있다.

즉, 병원 간의 병상 거래 자체가 불법이라기보다는 이를 의료기기업체가 리베이트 수단으로 활용할 경우에 의료기기법이나 공정거래법 위반이 되는 것이다.

오랜 기간 암암리에 이루어지고 있는 병상 거래 관행, 리베이트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면 관련 규제에 관해 전면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한다. 정부에서는 특수의료장비를 구입할 수 있는 병원의 시설 기준이 현실적인지 재검토하고, 고가의 의료기기 구매가 환자에 대한 비용 전가로 이어지는 것을 막겠다는 규제가 실효적이지 않고 오히려 리베이트 등 다른 불법행위를 양산하고 있다. 이제 다른 방향의 규제를 강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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