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도덕에 관한 10가지 철학적 성찰-버트란트 러셀 지음/자작나무

결혼과 도덕에 관한 10가지 철학적 성찰

▲ 버트란트 러셀 지음/자작나무

이 책의 저자 버트란트 러셀(Bertrand Russell)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베트남 반전운동, 핵무기 반대를 몸소 실천한 이 시대 대표적인 행동하는 양심이었다. 94세에 핵무기 반대를 이끌다 투옥을 당한 전력이 있는 그를 타임지는 합리주의자, 불가지론자, 정치학자, 사회학자, 자유주의자, 진보주의자 그리고 천재적 섬광이 번뜩이는 사상가로 칭한 것만 봐도 그의 삶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그는 대학에서 두 번 추방당한 전력이 있다. 한번은 케임브리지 시절 반전 운동의 선봉에 서다 1백 파운드의 벌금을 받고 교직을 박탈 당했으며 두 번째는 1940년 뉴욕시립대학의 교수직을 취소 당하게 되는데 그 때 문제가 됐던 저술이 바로 이 책이다.

러셀이 이 책을 쓴 이유는 간단하다. 하나는 여성운동의 일환으로 평등을 주장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결혼과 사랑에 대한 대립점에서 합리적 돌파구를 제시하고 있다. 당시만해도 기독교적 윤리관이 강제되던 시기였으며 금욕주의야 말로 신교주의자들의 지독한 상식이었을 때이다.

이에 대하여 러셀은 금욕주의가 주장되는 것은 방만한 타락의 결과이며 성적 방종이 여성과 남성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는 모순점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을 가한다.

그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계약 결혼(Trial Marriage)을 주장하며 결혼 후 배우자 이외의 이성과 연애할 자유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1970년대에 와서야 미국공립학교에서 여자아이들에게 바지가 허용된 것을 볼 때 1929년 이 책의 발간 당시 상황을 비교하면 그의 주장이 얼마나 많은 논란을 일으켰을지가 상상할 수 있다.

또한 여성의 정조에 대하여 그토록 가혹한 잣대를 적용 한 것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부계 혈연에 대한 확증을 구현하기 위함이며 이는 이후 자손의 양육에 대한 공동책임이 필요하기에 가능했지만 현대에 와서 혈연에 대한 혼란은 피임으로 양육은 국가의 사회적 책임이 강화됨에 따라 그 필요성이 희박해 지고 따라서 남성에게만 너그러웠던 도덕률이 여성에게도 같이 적용 되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의 정조에 대하여 그는 동서양의 차이를 비교 분석하였으며 역사적으로 이미 동양에서는 환관 등의 제도를 통한 여성의 성적 은밀함의 돌파구가 있었으나 유럽에서는 무조건적 금지만이 강요되는 점에 대하여 비판을 가하여 당시의 이중적 성윤리를 비난한다.

현대에 와서 성적 담론이 개방화되고 터부 시 되던 기혼자간의 사랑이나, 자유연애, 계약 결혼 등이 일상화 되는 것은 러셀 입장에서는 많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할 것이다. 하지만 Sex and the city와 같은 미국드라마가 주는 희열이 대리충족으로 한정될 수 밖에 없는 대부분의 현실에서 보면 사회구성체에 대한 보편적 준칙은 러셀이 주는 비판의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다.

러셀에게 있어서 좋은 결혼의 본질은 남녀 간의 엄숙한 사랑이 모든 인간경험 가운데 가장 풍성한 결실을 맺게 하는 육체적이고 영적인 상호간 인격에 대한 존경이라고 한다. 따라서 모든 위대하고 귀중한 것처럼 사랑은 자신의 도덕률을 요구하며 때론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을 희생해야 한다고 했으며 그 희생은 자발적이어야 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기초 자체가 파괴 되는 희생이 올 것이라 주장한다.

좋은 생활은 공포나 억제, 상호간의 자유에 대한 간섭 위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며 부부가 불성실해지지 않을 만큼 완전한 사랑이 이상적이지만 만약 불성실이 일어날 경우 무서운 것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이성과의 모든 우정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 못되기 때문이다. 우연적 과오는 서로 용서해야 하며 육체적 순결이 유지되고 깊고 영원한 애정의 궁극적 힘을 신뢰 한다고 해도 질투는 결혼의 불행을 초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식에 대한 어버이의 의무를 미덕이라 생각하기 보다는 자녀가 있는 이상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의무이다’라고 주장하였다.

그렇다면 러셀이 당시 주장하였던 파격적인 제안은 결혼에 대한 부정이며 나아가서 음란한 교설 이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이다. 그가 원하던 것은 조화로운 결혼 생활에 대한 제안이었으며 당시 성윤리에 대한 성적 불평등의 비판이었다.

합리적 철학자 입장에서는 남성들이 갖는 이율배반적 행태와 여성들이 갖는 은밀한 욕구의 분출이 그들의 가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작은 희생으로 지켜질 수 있는 가정이 독점욕이나 소유욕으로 인하여 파괴되는 것에 대한 합리적 선택을 주장한 것이다.

1차적 책무에 대한 의무와 존중이 지속된다고 하면 개인이 갖는 감정은 존중되어야 하고 이는 부부 사이에 일정 부분 동등한 가치로 인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하여 그는 개인이 갖는 무시할 수 없는 고독으로부터의 인간적 고뇌를 해소하며 나아가서는 자녀에 대한 책임을 강조한 것이다.

러셀은 영국웨일즈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조부는 두 번이나 수상을 지낸 명문가 출신이었다. 어릴적 부모님을 모두 여의고 조모 밑에서 자란 러셀은 본인도 사랑과 결혼에 대한 그의 감정에 충실했다. 수학자로 시작하여 철학과 사회운동으로 일생을 바쳤고 78세 노벨상 수상과 많은 저서를 남겼다.

번영은 김영철 님이 맡았으며 출판은 자작나무에서 1997년에 발간되었다.  

[기고자 소개]
이태윤
자유와 방임을 동경하고 꾸준한 독서가 아니면 지능이 떨어진다고 믿는 소시민이며 소설과 시에 난독증을 보이는 결벽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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