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중문화 속의 의료기기 이야기 - 15회

■ 대중문화 속의 의료기기 이야기 - 15회

"킹덤 오브 한방 의료기기"

▲ 임 수 섭
LSM 인증 교육원 대표
의료기기 법정 품질책임자
RA 자격증 교육 강사

좀비 영화, 공포 영화의 서브 장르로 살아 움직이는 시체가 주가 되는 영화다. 피와 살이 튀는 고어(Gore)적 특성, 총을 맞아도 죽지 않는 불사신과 물리거나 긁히면 감염된다는 소재의 독특한 매력으로 인해 상당한 인기와 마니아를 확보한 장르이다.

이런 좀비 영화는 좀비 영화의 법칙을 제시한 좀비 영화의 아버지 조지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시작으로 해서 빠르게 달리는 좀비를 처음 소개한 '28일 후', 도리어 좀비를 살육하는 액션의 향연을 펼친 '레지던트 이블', 압도적 물량의 좀비떼와 장대한 대결을 그린 '월드워 Z', 좀비로 인해 고립되고 핀치에 몰린 인간 군상들의 협력과 반목, 애증과 배신을 담은 드라마 '워킹데드' 그리고 초고속 열차라는 목적지가 정해진 한정된 공간에서 엄습하는 좀비와의 혈투를 가족애와 인간애로 녹아낸 '부산행'까지 냉전 시대의 공산주의나 핵전쟁에 대한 두려움부터 21세기의 전염병에 대한 공포심까지 반영한 대표적인 아포칼립스물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좀비물은 영화, 드라마뿐만 아니라, 게임, 만화, 뮤직비디오 등 대중매체에서 다양하게 활용됐다. 역대 최대의 음반 판매량과 더불어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 팝 음악의 역사를 바꾼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명반 '스릴러'의 동명 타이틀곡의 뮤직비디오도 좀비를 주제로 한 것이다. 그 속에서 나오는 좀비 댄스는 수많은 엔터테이너와 미디어에 의해서 오마주 됐으며, 그 뮤직비디오 역시 미국 국회도서관에 보관된 유일한 뮤직비디오이자, 미국 국립영화등재 목록에까지 올라간 수작이다.

킹덤! BTS와 기생충에 이어 대중 문화 세계 한류의 3연타를 친 이 드라마는 가상의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와 정치 스릴러가 어우러진 좀비물 드라마이다. 킹덤에 대한 반응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열광적이다. 앞서 말한 좀비 영화의 장점들만 족집게처럼 뽑아서 극한까지 끌어올린 것과 더불어 기록적인 경제 성장과 함께 수준 높은 민주주의까지 성취하면서 선진국 문턱까지 진입한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에 대한 관심과 매력이 어우러지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 것이다.

이는 한강의 기적과 삼성, 현대, LG 등의 일류 대기업으로 상징되는 대한민국의 눈부신 산업 성장, 6.10 항쟁과 촛불집회로 대표되는 민주주의의 성취와 온전한 정착,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까지 퍼져나간 한류 드라마-음악-영화의 활약 속에 '대한민국의 위대함'의 또 다른 정점을 찍은 유의미한 성과로 헤아려진다.

이 드라마 속에 나오는 조선 시대 의복, 주택, 무기, 생활상과 함께 외국 시청자들의 관심을 끈 내용 중의 하나가 작중의 한방 의료일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킹덤의 오프닝 씬에서 시체가 된 왕의 시신에 놓여있는 침과 뜸인데, 그것부터가 멸균침 혹은 비멸균침, 점화식온구기 또는 전기식온구기로 규정된 의료기기이다. 가정에서 흔히 사용하는 부항기 역시도 수동식부항기와 전동식부항기라는 품목명으로 존재한다.

그런데 지난 정부부터 현 정부까지 X-ray, CT, 골밀도 측정기, 초음파 영상진단장치 같은 현대 첨단의료기기에 대한 한의사의 사용 여부에 대해 양의학에서는 현대 의학 비전문가의 사용 시 부작용 발생, 전문가의 관리에 의한 환자 안전 확보 그리고 양의학과 한의학의 차이점 인정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또 반대편인 한의학에서는 동등한 의학이라는 측면에서 사용 가능, 규제 장벽 철폐 그리고 우리나라 고유 한방 육성 기회의 관점에서 찬성하는 등 이견의 큰 간극으로 인해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온계, 혈압계, 청진기, 주사기 같은 간단한 의료기기부터 침전기 자극기, 간섭파 치료기, 고주파 치료기, 자기장 치료기, 파라핀 치료기 등 제법 복잡한 의료기기까지 현재도 한방 진료에서 사용 할 수 있는 의료기기가 상당수 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런 한방 의료기기가 식약처 규정상 의료기기 등급이 1~2등급으로, 제품이 복잡하지 않고 위해성이 낮은게 사실이다. 생명을 다루거나 확실한 치료를 담보 할 수 있는 3등급 이상의 의료기기가 없다는 점은 현재 한의학과 한방 의 료기기가 처한 현실과 한계를 여실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지난 10년간, 체질분석툴, 맥진기, 체질건강의자 그리고 한방피부분석기 등과 같이 한방전문 의료기기가 개발됐지만, 국제표준화의 부재, 한방의료기기 시장의 영세성, 한방적 효능을 현대 과학으로 증명하는 것의 어려움, 보험 수가 인정의 곤란 등으로 인해 정식 의료기기로 거의 승인받지 못하거나, 사용목적과 효능을 축소해 현대 의료기기의 카테고리에 겨우 끼워 넣어서 허가를 받았을 뿐이다.

반면, 양의학으로 대표되는 현대 의학과 관련된 의료기기의 발달은 눈부셔서 의술의 한계선을 멀리 후퇴시키는 한편, 의사의 역할을 합리적으로 축소시키고 있다. 그만큼 진료의 재현성과 안정성을 높여 의료 수준을 상향 평준화시킴으로써 의료서비스의 보편화, 의료 혜택의 민주화에 큰 기여를 한 것이다. 한방 의료기기의 사명 역시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의사의 체험, 능력과 감에 의존하는 전형적인 도재식, 아날로그 방식의 한의학을 객관화 및 데이터베이스화하고 규모 있는 산업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한의학에 적용될 수 있는 한방전문 의료기기가 많이 개발돼야 한다. 또 이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식약 처를 중심으로 정부가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사료된다.

"준비가 안 돼서 패한 거요(It is because you were unprepared)." 이 대사는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서 명문과 목적을 잃은 채 무모한 공격을 한 십자군을 격파한 살라딘이 한 말이다. 세계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는 코로나 19의 대재앙 속에서 단순히 선전을 넘어서서 세계 방역과 질병 관리의 모범 사례로까지 떠오른 우리나라의 모습은 국민과 의료진의 자발적 협조와 헌신적인 대처의 결과라고 하지만 그 바탕에는 정부의 철저하고 체계적인 준비가 있기에 가능했다. 메르스 사태 직후 대대적인 방역 시스템 개선과 코로나19 체외진단키트에 대한 선제적이고 발 빠른 개발과 인허가 조치와 같이 우리나라는 사전에 준비했기 때문에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패하지 않았고, 종국에는 이길 것이라 믿는다.

우리나라 기업이 개발한 코로나19 체외진단키트로 수많은 인명을 살려 내고, 극심한 불황 속에서도 관련 의료기기산업의 발전을 가져왔듯이, 한방 의료기기 역시 미래 우리나라 의료기기산업의 발전과 국민 보건 향상의 한 축을 담당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작년에 추나요법이 그 가치를 인정받아 급여화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한방 의료기기 역시 현대 의학과 현대 의료기기의 상호보완 또는 합리적 대안으로써 한의학의 발전과 함께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해 마지 않는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의료기기뉴스라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