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로 교수, 의료기기산업을 말하다⑨

■윤영로 교수, 의료기기산업을 말하다⑨

"식약청·식약처, 복지부 그리고 의료기기산업과 지난 세월"

▲ 윤 영 로
연세대 보건과학대학
의공학부교수

총 12회 연재기고에서 3/4인 8회가 지났다. 당초 계획은 의료기기 제품 개발부터 시작해 가장 중요한 최종 단계인 인허가와 신의료기술평가, 임상 그리고 보험을 담당하는 식약처와 복지부 관련 기사를 쓰는 것이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로 모두 바쁘기에 확인이 필요한 사항도 있을 수 있어 보류할까 했으나 이럴 때일수록 독자들에게 필자가 생생하게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기고를 함으로써 기업은 기업대로 식약처나 복지부의 그간 노력을 이해하고 격려해주고, 식약처나 복지부는 방역도 중요하지만 기업의 애로를 해결해 주는 서로 걱정해 주고 격려하는 속에서 국내 의료기기산업이 더 발전해 이 위기를 극복하기 바라는 의미에서 쉼 없이 2회에 걸쳐 써본다.

전 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으로 모두가 힘든 이 시기에 의료기기를 주제로 글을 쓰려니 쉽지 않다. 마스크 부족으로 국민이 힘들어하고, 초기에 마스크와 관련해서 식약처 대응뉴스가 방송이나 신문지상에 나올 때는 식약처 정책자문관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한편 류영진 전 식약처장 시절 마스크 검사기관을 1개에서 7개로 확대했던 식약처의 노고를 국민이 얼마나 알지 생각해 본다. 외부에서는 필자보고 이런 식약처의 변화를 얘기하면 '당신이 식약처 대변인이냐'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 필자가 의료기기 회사들의 민원 해결과 기업의 입장에서 정책 제안을 할 때면 식약처 관계관들에게 '제가 검찰 조사관 같죠?' 하는 농담을 한 적이 많았다. 이런 일들이 식약처에 대한 애정어린 쓴 소리꾼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메르스 확산이 감염내과 활성화

지금은 세계 보건과 경제 상황이 대혼란의 시기이며 위기의 시간이다. 유럽 지역을 비롯한 많은 국가가 외출 제한으로 인해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지경이다. 사전 주문한 제품들에 대해 선적이 보류된 경우와 센서 등 원자재 수입의 어려움으로 힘든 업계분들이 많이 있다. 대학 역시 지난 26년 간 생각지도 못한 개강 연기를 했고 5월 13일까지 일단 비대면 강의를 진행한다. 아마도 이번 학기는 학생들 얼굴 한번도 보지 못 하는 비대면 강의로 끝날 것 같다. 특히 작년부터 개설한 국내의료기기 인허가 강좌를 비대면으로 하려니 주중은 강의 준비를 하고 주말에는 촬영을 하느라 고생이다. 누구도 경험하지 않은 모두가 힘든 이 시기, 위로와 함께 '힘내세요'를 외쳐 본다. 그리고 어려운 상황의 국내 의료기기 업체분을 위해 기도를 드리겠다는 말씀을 드린다.

필자가 식약처와 연을 맺은 시기는 2004년부터다. 지난 3년 동안 식약처 정책 자문관으로 첫 일 년은 일주일에 이틀을 오송 한국보건 복지인력개발원에서 지내며 늦은 밤 각 건물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고 초기에 혹자는 공무원들이 전기를 아끼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필자의 느낌에는 민원해결을 위해 늦은 시각까지 일을 하는 모습이 고등학생들이 야간자율학습을 위해 학교에 남아 있는 것과 같은 분위기였다.

식약처의 밤 모습

사건 하나 터지면 불철주야에 해당국의 분위기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적막이 흐르며 대책 마련에 분주했다. 필자가 최근에도 식약처 상황이 궁금해 연락해 보면 의료기기안전국도 의약외품인 마스크의 원활한 유통을 위해 마스크 제조 현장에 파견 나가 있는 사람도 있고, 진단 키트 허가관리로 바쁘다. 이런 와중에 종종 식약처 정책 자문관인 필자에게 진단키트 개발 후 인허가에 대한 질문과 민원, 인공호흡기 관련 민원이 들어오면 아는 범위에서 답변하고, 특이사항에 대해서는 해당 부서에 문의하고 있다. 바쁜 와중에도 그때마다 대응해 주니 고마울 뿐이다.

국내 의료기기산업을 비롯한 보건산업은 1997년 IMF 구제 금융위기에도 우리는 슬기롭게 극복했다. 3월초 코로나19를 세계보건 기구인 WHO가 감염병 위험 수준에 따라 1-6단계의 경보 단계를 설정하는데 가장 높은 6단계인 팬데믹을 선언했다. 팬데믹은 1969년 홍콩독감과 2009년 신종플루 이후 세 번째이다. 2015년 메르스는 5월 20일 시작해 12월 23일 자정을 기점으로 종료를 공식 선언 했다. 필자가 특강 요청을 받아 수십 차례 '국내의료기기 산업 현황과 미래' 특강에서 늘 언급하듯이 국내 보건산업의 발전은 사건 중심 속에 발전을 거듭해 왔다.

사건속에 보건산업의 발전

우연의 일치인지 1994년 말 '전문의의 수련 및 자격증 등에 관한 규정'이 개정되고 1995년 12월 전문의가 양성되기 시작했다.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 후에 응급의학의 필요성이 더 대두되지 않았나 싶다. 2011년 아덴만 사건 후에 외상센터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2012년 메르스 사태 후에 감염병과 관련한 관심과 중요성을 볼 수 있다. 모든 형태의 사건 발생을 따라 국내 의료기기산업이 발전해 왔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보더라도 코로나 진단키트의 신속 개발과 식약처의 긴급사용승인 결과에 따른 공급이 이뤄졌고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진단을 통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필자 역시 에콰도르에 있는 현지 의사의 요청으로 진단 키트 회사를 소개하고, 특히 국내 최초로 귓속형 체온계를 연세대 저의 생체신호처리 연구실에서 산업화 했다. 또 식약청 회의에 참석하면서 지금의 체온계 표준 규격을 만들었다. 또한 연구실 졸업생 3명이 오래 전에 창업한 ㈜메쉬에서 개발한 열화상 발열검사기가 이번 코로나 사태 해결에 일조하고 있어 자랑스럽다.

의공기사증을 국가공인으로

의료기기는 공산품과 달리 사람의 생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에 인허가가 중요한 사항의 하나이고 이를 최종 승인하는 식약처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미국 FDA와 비교하면 예산과 인원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그중 의료기기 분야는 식품이나 의약품에 비해 매우 열악한 상황이다. 필자가 우연히 식약처 전신인 식약청과 인연을 맺은 날짜를 헤아리면 2004년 5월 6일이다. 당시 대한의용생체공학회에서 자체 민간 의공기사 자격증을 만들어 시행하며 이를 국가공인자격증화 하는 것이 중요사항이었다. 필자는 오송생명과학단지 조성 관련 회의에 참석하면서 당시 복지부 임종규 보건산업진흥과장과 만났고, 식약청 故이건호 과장을 만나 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역시 고인이 된 학회 교육분과위 원장이었던 인제대 남상희 교수와 같이 서울 불광동에 있는 식약청을 방문했다. 이 만남으로 故이건호 과장과 임종규 과장의 애정어린 협조로 의공기사 자격증은 산업인력공단이 주관하는 국가공인자격증으로 등록됐다. 2019년 식품의약품안전백서에 의하면 2004년 5월 24일 의약품안전국 의료기기과를 의료기기안전과와 의료기기관리과로 분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필자가 처음 만난 故이건호 과장은 의료기기과장에서 의료기기안전과장이 됐고 새롭게 만들어진 의료기기관리과장은 지금은 고인인 故류시한 과장이다.

故이건호 과장이 국내 의료기기산업 발전에 동참하지 않겠냐는 권유로 식약청과의 인연을 맺어 원주에서 불광동을 다니던 시절이 그립다. 많은 인연 속에서도 현직을 떠난 이철규 사무관과 현재 의료기기관리과장인 유희상 과장과 지난해 식약처를 퇴직한 한미성 사무관이 기억에 남는다. 그 외에도 故이건호 과장과 의공학부(과) 졸업생들을 의료기술직으로 채용하는 문제를 논의했고, 채용 자격 요건을 고민하면서 의공관련 학부(과)로 명시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2004년 9월 7급 공무원 7명, 9급 공무원 7명이 식약처에 채용됐다. 2020년 4월 8일 그중 한 명이 서기관 승진을 했다. 또한 고인의 요청으로 서울대 김희찬 교수와 당시 삼성서울병원 권혁남 의공과장에게 합류할 것을 권해 지금까지 식약처와 함께 일을 하고 있다. 故남상희 교수와 김희찬 교수, 권혁남 당시 과장에게도 이 지면을 통해 감사드린다.

의료기기, 의약품에서 독립해

기록을 찾다 보니 2002년 3월 19일 현재 유희상 의료기기관리과장과 현재 한국의료기기안전정보원장인 조양하 원장(당시 의료기기평가부 의료기기규격과)이 연세대 원주캠퍼스 의공학부 교수들과 과기부 지원의 의용계측 및 재활공 학연구센터, 산업부 지원의 첨단의료기기 기술혁신센터와 공동으로 개최한 '식품의약품안전청에 관련된 인허가 실무교육'에서 '국내 의료용구 인허가 실무교육'을 강연했다. 2002년 3월 28일에는 김명교 고문이 '의료기기의 Softrware 유효성 검증은 이렇게 합니다'라는 주제로 실무 교육을 원주에서 가졌다.

의료기기 인허가 교육

이런 자료를 보면 강원도 원주의료기기산업이 현 위치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인허가의 중요성을 기업에 알리기 위해 열악한 교통 상황에서도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또 정희교 교수가 2004년 방사선표준과장을 했다. 필자는 2004년 3월 1일부터 2007년 4월 25일까지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의료기기산업 발전협의회 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식약청은 복지부 외청이기에 당시 회의에 복지부와 식약청 관계자가 참여해 국내 의료기기산업 발전을 위해 기업인과 공무원들이 고생을 했다. 당시 한국보건산업진흥 원장은 이경호 원장이었으며 원주까지 와서 자주 축사를 했다. 회의를 끝내고 故이건호 과장, 故류시한 과장 그리고 기업들과 노량진 수산 시장에서 회포를 풀던 시절 역시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그리운 과거이다.

현 김인기 부산검역소장과 안명수 서기관과 유희상 과장의 노력으로 의료기기법이 의원입법 됐으며, 2003년 5월 29일 제정, 2004년 4월 30일 공포시행됐다. 필자는 2005년 국무총리실 산하 대통령직속 의료산업선진화 위원회 전문위원을 하면서 매주 하루는 원주와 서울을 오가며 일을 하게 됐다. 2004년 의료기기 품질관리(GMP) 제도가 실시되고, 3년 유예기간을 둔 2007년 대책마련에 고민이 많았다. 당시 식약청에서 채규환 주사, 복지부에 김인기 사무관, 기획재정부에서 박형수 사무관이 파견 나와 많은 일을 함께했다. 당시 부단장은 류호영씨, 현재 복지부의 양성일 실장이 보건산업진흥과장이었다. 항상 우문현답의 현장이 중요하다는 것이 내 주장이기에 독일 뒤셀도르프 전시회 참석을 주장했다. 이를 계기로 중앙 공무원들이 세계 의료기기 시장을 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여긴다.

2005년 9월 30일 식약청 본청이 2관 2국 6부 체제에서 6본부 4부로 개편되면서 의료기기본부와 의료기기 평가부가 생겼다.

식약처 의료기기 관련 변화

본격적으로 의료기기법이 제정되고 의료기기가 의약품에서 독립돼 나오면서 본부체제로 바뀌는 새로운 시기를 맞았다. 의료용구라는 명칭이 의료기기로 변경됐으며, 2008년부터 매년 5월 29일을 의료기기 날로 선포해 기념행사를 한다. 필자는 2013년 12월 5일 복지부 추천으로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했다. 2017년 5월 29 일 제10회 의료기기의 날 행사에서는 식약처 추천으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대통령상 수상

식약청에는 2006년 8월 25일 의료기기품질팀이 새롭게 신설되고 2007년 의료기기허가심사팀이 생겼다. 필자가 1994년 귀국해 조교수로 의료기기산업에 발을 디딜 당시를 걸음마 단계라 하면, 2004년은 10년이 흘러 앞만 바라보고 뛰는 시기가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필자가 역대 식약청장과 식약처장 중에서 윤여표 식약청장과 이상용 차장부터 직접 만나고 회의도 했다. 이 시기가 2008년으로 의료기기산업발전협의회를 당시 이희성 본부장이 주관했다. 2008년 2월 29일 규제개혁법무담당관이 신설 되면서 같은 해 5월 7일 식약규제합리화위원회가 구성되고 필자는 의료기기규제개혁분과위원장을 맡았다. 이 시기에는 윤여표 식약청장과 이상용 차장이 원주 현장 방문을 통해 기업인들을 만나면서 당시 故이건호 과장과 후임인 유성현 과장과 많은 일을 추진했다. 불필요한 규제가 이 시기에 상당수 개선됐다. 최근 발령받은 의료기기정책과 김유미 과장하고도 당시 같이 일을 했다.

2009년 열정으로 공무에 임했던 故이건호 과장이 병마를 이기지 못한 것이 애석했다. 당시 큰 자제가 건국대 의공학과를 다녔고, 故이건호 과장 본인도 의료기기 관련 석사 학위를 받았다. 병마를 이기겠다는 굳은 의지를 나타냈으나 임종 일주일 전에 질병관리본부 윤승기 과장과 병상을 찾았을 때 '윤 교수님 건강검사 꼭 하시고 건강 챙기세요'가 유언이 됐다. 당시 임종규 과장과 밤을 지새우며 새벽에 발인을 끝내고, 불광동 식약청을 돌 때 굳게 닫힌 문을 임종규 과장이 두드려 열어 청사를 한 바퀴를 돌고 나왔던 기억이 난다. 이후 2017년 큰 자제의 요청으로 주례를 서면서 그분의 고마움에 대한 보답을 해드리지 않았나 생각한다.

기업 애로사항 해소에 총력

그간 정부 부처의 많은 위원회에서 일을 하면서 유독 식약처 일을 많이 하면서 규제라는 것을 잘 알게 됐다.

부처별 위원회 참석
왼쪽부터 식약처 관련 위촉장, 복지부 관련 위촉장, 의료산업선진화 위원회 위촉장
의료기기국내제작
곤란품목추천심의 위원

기업의 애로사항을 해결할 적에, 그간 관계를 맺은 지인들에게 문의하고, 해결 방법이나 사람을 소개해 받으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와 첫 인연이 2003년 11월 9일 의료기기국내 제작곤란품목추천심의 위원으로 시작했다. 다음이야기는 협회보 5월 의료기기 인허가교육호에서 이어 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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