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부한 의료기기 수요·잠재적 성장세, 까다로운 인허가 진입장벽"

■ 현장르포-제82회 중국국제의료기기전시회(CMEF Autumn 2019)

'계륵' 같은 中 의료기기시장 진출, 딜레마에 빠진 한국
"풍부한 의료기기 수요·잠재적 성장세, 까다로운 인허가 진입장벽"
국내사 중국법인장 "현지 제조생산·인허가 등록으로 돌파구 찾아야"

국내 의료기기제조사에게 중국은 어느덧 '계륵(鷄肋)' 같은 존재가 돼버렸다. 2023년 401억 달러(약 47조2779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는 의료기기시장은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중국 식약처(NMPA·구 CFDA) 인허가 획득은 점점 까다로워지고 있는 것.

자국산 의료기기 사용 정책과 인허가제도 강화 등 높아진 진입장벽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인 의료기기 수요와 성장세를 감안하면 중국 진출을 포기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고민의 흔적은 중국 의료기기산업 현주소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이자 미래를 가늠하는 ‘중국국제의료기기전시회(China International Medical Equipment Fair·CMEF)’를 통해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국은 전 세계 국가 중 최초로 2002년 CMEF에 ‘국가관(Pavilions)’을 꾸려 참가할 정도로 중국시장 공략에 선제적으로 나섰다. 하지만 불과 5~6년 전만하더라도 50곳이 넘었던 CMEF 한국관 참가업체들은 근래 들어 절반 이하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높은 수입 의존율과 모방에 의존한 저부가가치 ‘Made in China’ 오명을 벗어던지고 CT·MRI 등 진단영상장비부터 치료재료까지 국산화에 성공하며 의료기기 변방국에서 강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더 이상 만만한 시장이 아니다. 더욱이 로컬기업 기술력이 급성장한 것은 물론 자국 의료기기산업 보호 정책과 맞물려 높아진 중국 인허가 장벽은 한국 업체들의 현지 진출을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

실제로 한국 업체들은 우스갯소리로 “중국 NMPA 인허가 획득이 FDA 보다 더 어렵다”는 하소연을 할 정도로 큰 어려움에 봉착해있다. 기자는 지난 10월 중국 칭다오에서 폐막한 ‘제82회 중국국제의료기기전시회(CMEF Autumn 2019)’ 기간 중국 의료기기시장에 진출한 국내 제조사 중국 법인장들과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짧게는 3년, 길게는 20년에 달하는 인허가 진행 등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소위 ‘중국통’으로 불리는 복수의 현지법인장을 통해 중국 진출의 현실적인 난관을 살펴보고 그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목적에서다.

셀바스헬스케어, 탄탄한 판매왕 구축, 시장점유율 확대 나서

황태건 셀바스 헬스케어 중국 법인장은 한국 의료기기업체들이 중국시장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과 조급함을 버려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황 법인장은 “중국 의료기기 인허가 획득이 과거보다 어려운건 사실이다. 반대로 한국 KFDA·유럽 CE·미국 FDA 인증은 받기가 수월한지 묻고 싶다”고 반문한 뒤 “환자 안전을 위한 의료기기 인허가는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까다로워지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또 “한국 업체들은 전통적으로 일본 유럽 미국 진출이 힘들다고 여기는 반면 상대적으로 중국은 얕잡아 보는 인식이 있다”며 “이러한 잘못된 선입견으로 중국시장에 진출하면 100%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특히 “기존 각 성(省)에서 진행해 상대적으로 수월했던 의료기기 인증을 앞으로 NMPA에서 통합하는 법안이 통과돼 곧 시행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중국 의료기기 인허가는 더욱 까다로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NMPA가 수입 의료기기라고 해서 일부러 인허가를 지연시키지는 않는다”며 “중국 현지법인이 없는 초기 진출 한국 업체들은 적어도 NMPA 인허가 획득까지 최소한 2년 정도 소요된다는 생각으로 철저히 준비해야한다”고 주문했다.

황태건 법인장은 성공적인 중국시장 진입을 위해 현지 제조생산 전략 수립은 물론 대리점 체결 등 판매 네트워크 확대 또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 정부가 자국산 의료기기 생산을 장려하고 수입산 의료기기 공공입찰을 제한하고 있는 만큼 현지 제조업체를 발굴해 조립을 맡기는 Made in China 전략으로 직접생산 비용부담을 줄이고 불리한 인허가 허들을 극복해야한다는 것.

더불어 중국 내 인구가 많고 소득 수준이 높은 1·2급 도시와 달리 예산 지원과 정부 정책이 미치지 못하는 현급 지역은 여전히 의료기기 수요가 풍부하기 때문에 직접 판매에 나서기보다는 신뢰할만한 총판·딜러·서브 딜러 등 견고한 판매망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그는 “중국은 34개 성급 행정구역이 있으며 이 가운데 광동성·하남성만 하더라도 인구가 1억명이 넘는다”며 “셀바스 헬스케어는 2017년 중국법인 설립 후 3년간 중국 전 지역에 걸쳐 판매 네트워크를 강화하는데 노력해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총판·딜러 세부 딜러가 약 200곳에 달하며 지속적으로 판매망을 넓혀 나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황 법인장은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어느 시장이나 어렵기는 마찬가지”라며 “중국 의료기기시장은 계속 성장하고 있으며 그 어느 나라보다 수많은 기회가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

멕아이씨에스, 중국 제조생산업체와 파트너 체결, 성과 가시화

국내 호흡치료기 전문기업 멕아이씨에스는 2016년 중국 현지법인 연태세종의료기계유한공사 설립 후 올해부터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멕아이씨에스가 반제품 형태로 호흡치료기를 공급하면 기술제휴를 맺은 중국 파트너 MEDSOFT社가 현지에서 조립·판매를 진행하는 우회수출 방식의 계약을 체결한 것.

고근덕 중국 법인장은 “2016년 현지법인 설립 후 자체적으로 인허가를 진행할 계획이었다”며 “하지만 규정에 대해 잘 몰랐고 또 규정 또한 자주 변경됐으며, 제품 성능 규격 검사 또한 연태지역 내 시험검사소가 없어 산둥성 인근 주도까지 6시간 걸려 가야하는 등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포기했다”고 밝혔다. 중국 법인은 해결책으로 중국 제조생산업체를 파트너로 찾았다.

이는 멕아이씨에스 본사로부터 호흡치료기 핵심부품을 받아 반조립하고 이를 다시 현지 제조생산업체에 공급하면 해당 업체가 제품을 생산하고 제품 등록까지 진행하는 현지화 시스템 구축을 위한 선택이었다. 그는 “직접 인허가 등록을 진행하거나 현지 생산을 하는 건 비용부담이나 위험요소가 크기 때문에 부분조립생산(semi-knockdown·SKD) 방식의 전략을 수립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허가증은 현지 제조업체 이름으로 등록되지만 어차피 제품 라벨은 멕아이씨에스 로고가 붙기 때문에 한국산 이미지를 홍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본사 입장에서는 중국에 핵심부품을 팔든 완제품을 팔든 수익은 똑같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국내 의료기기제조사 자체적으로 임상시험이 요구되는 2등급 또는 3등급 의료기기로 중국 인허가를 받는 건 사실상 어렵다”며 “중국 현지 제조사를 통해 인허가 등록을 진행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고 법인장은 다만 “중국 제조업체가 인허가 등록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제품 자료를 줄 수밖에 없다”며 “만약을 대비해 의료기기 소프트웨어 버전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하거나 카피할 수 없도록 안전장치를 걸어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멕아이씨에스가 현지 제조생산 전략으로 시장 안착에 성공한 것과 달리 중국 합작법인을 설립한 의료기기제조사도 있다.

웨버인스트루먼트, 중국 합작법인 설립, 수출 판매망 확충

웨버인스트루먼트는 체외충격파치료기·고강도레이저치료기를 동시 구현한 복합통증치료시스템과 심부자극 전자기장·레이저 치료를 접목한 복합자극기 등으로 기술력을 인정받아 경기도유망중소기업·수출유망중소기업에 선정된 강소기업. 체외충격파치료기만으로도 안정적인 내수시장을 확보한 회사는 고령인구 증가로 통증·재활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 의료기기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모성희 대표는 “과거 우리가 부품을 공급하면 중국 업체에서 장비를 제조하고 인허가를 받는 현지 생산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아무래도 제품 기술력·노하우를 알려줄 수밖에 없고 카피에 대한 우려가 있을 뿐 아니라 허가증을 갖고 있는 중국 업체를 관리하기 어려워 비즈니스 영속성이 떨어지는 한계가 있었다”고 환기했다.

웨버인스트루먼트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투트랙(two track)’ 전략을 수립했다. 투트랙 전략 중 하나는 중국 내 제조업체 대신 수입유통 전문 파트너사와 협업하는 방법.

현지생산이 아닌 만큼 수입품목 등 인허가 획득에 다소 시간이 소요되는 불리함은 있지만 전국적인 영업망을 구축한 유통사를 적극 활용해 장비 판매를 극대화하겠다는 복안이다. 이를 위한 중국 파트너 선정 또한 이미 끝마친 상태다.

또 다른 투트랙 전략은 중국 내 합작법인 설립이다. 웨버인스트루먼트·베이징화광푸타이유한회사가 각각 45%·55% 지분 참여로 설립한 ‘심천화밍웨이보의료기기유한공사’를 통해 수입 및 제조품목 인허가를 병행한다는 계획이다.

외국산 선호도가 높은 의료기관 수요에 한국산 의료기기 브랜드로 부응하는 한편 상대적으로 의료기기 인허가 획득이 유리한 현지 생산까지 고려한 ‘양수겸장’의 포석인 셈이다.

전영철 중국합작법인 부사장은 “중국에서 약 10년간 의료기기 인허가, 연장 허가, 제품 규격 검사, 정부입찰, 딜러십 체결 등 많은 업무를 경험했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은 까다로운 인허가와 자국 의료기기 사용 정책 등으로 수입 의료기기 진출이 쉽지 않은 계륵 같은 존재가 되고 있지만 여전히 폭발적인 수요와 잠재력이 큰 매력적인 시장”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통증·재활환자가 급증하고 있는 중국에서 웨버인스트루먼트만의 차별화된 기술력을 내세운 복합통증치료기·복합자극기는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며 중국시장에서 한국산 의료기기 브랜드로 수입품목 인허가를 진행해 직접 판매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부가가치를 높이겠다”고 강조했다.

주지하다시피 진입장벽이 높아진 의료기기 인허가제도와 자국 의료기기 사용 정책은 물론 수입 의료기기 대리인 관리방법 규정 강화와 의료기기 표준코드(UDI) 부착 의무화까지 중국 의료기기시장 진출은 시간이 갈수록 요원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중국뿐만 아니라 유럽 MDR(Medical Device Directive) 규정 강화에서 알 수 있듯이 전 세계적인 추세다.

특히 국내 제조사 입장에서 폭발적인 의료기기 수요와 잠재력이 있는 중국은 쉽사리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한국과 중국 간 기술 차이는 없다손 치더라도 여전히 품질 격차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단기적인 성과에 연연하는 조급함을 버리고 한국산 의료기기 품질 경쟁력을 내세운 긴 호흡의 중국 의료기기시장 진출 전략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정희석 메디칼타임즈 기자

▲ 지난 10월 22일 중국 산둥성(Shandong) 칭다오시(Qingdao) 코스모폴리탄 박람회장(Cosmopolitan Exposition)에서 폐막한 ‘제82회 중국국제의료기기전시회’(CMEF Autumn 2019) 현장 모습
▲ 한국은 전 세계 국가 중 최초로 2002년 CMEF에 ‘국가관’(Pavilions)을 꾸려 참가하며 중국 의료기기시장 공략에 선제적으로 나섰다. 사진은 CMEF Autumn 2019 한국관 전경
▲ 셀바스 헬스케어 중국법인 총판 심서강(XINRUIKANG)은 CMEF Autumn 2019에 참가해 체성분석기 ‘ACCUNIQ’를 선보였다.
▲ 황태건 셀바스 헬스케어 중국 법인장은 한국 의료기기업체들이 중국시장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과 조급함을 버려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사진 왼쪽부터 모성희 웨버인스트루먼트 대표이사와 전영철 심천화밍웨이보의료기기유한공사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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