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조은주, 출판사 창작과 비평사

가족과 통치
인구는 어떻게 정치의 문제가 되었나?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둘도 많다 하나만 낳자!'라는 구호가 익숙한 세대에게 가족계획이라고 하는 인구 억제정책에 대한 이유를 질문하면, 대부분 인구가 많아서라는 답을 하기 마련이다.

가족계획이라는 인구 감소 정책이 시작한 시기인 196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당시는 농업이 주요 산업이었고 인구는 대표적인 생산력의 척도였다. 생산수단조차 변변하지 않던 시기에 인구 감소에 대한 강력한 정책 의지의 목적은 무엇이며 어떤 과정으로 성공적인 했는가에 대한 질문은 인구에 대한 현재 시각을 보는데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출산이란 자연적인 현상이지 통제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마을회관이나 노인정 등에 가서 주변을 둘러보면 8남매, 9남매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것만 봐도 당시의 출산은 조절이 아닌 자연적인 순응의 대상이었다.

인구라고 하는 개념이 만들어진 지는 그리 길지 않다. 유럽조차 인구라는 개념이 18세기에 이르러서야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인구정책의 시작은 뜻밖의 장소에서 제기되고 구상됐다고 한다. 국민건강의료보험을 시행하기 위해 스위스에 방문한 학자에게 주어진 제안은 인구에 대한 감소 정책이었고 방법은 가족계획이었다.

가난한 나라 대부분이 겪고 있던 인구 과잉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어떤 사회정책도 시행하기 쉽지 않다는 국제기구의 조언이었다.

이후 미국의 카네기 등 국제 지원기관이 가족계획을 위한 정책에 기구, 피임약, 운송수단의 지원을 하기 시작했고, 이에 맞추어 우리나라도 국내 조직을 설립해 구조적인 인구 감소 정책에 나서게 된다.

이 과정에서 매우 흥미로운 사실은 당시 가족계획협회에서 발행되었던 ‘가정의 벗’이라는 기관지였다. 1968년 8월 5일 창간해 전국 가족계획 어머니회를 통해서 배포됐던 일종의 정부 기관지인데 매호에 걸쳐 다양한 성 담론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 상당한 보수적 사회 풍토에서 정부 기관지가 부부의 성이나 외국의 성 실태 등 섹슈얼리티를 담은 것은 지금 기준으로 봐도 파격적인 내용이었으며 인구정책에 대한 진보성을 볼 수 있게 한다.

가족계획 자체가 도심 중산층 이상에서 시작해 점차 농촌으로 확산해 가는 과정을 거치고, 출산 조절을 통한 소가족이 근대화의 상징처럼 나타나게끔 표현하고 더불어 성에 대한 담론을 가감 없이 표현한 것은 국민 계몽형식의 전략으로 흥미로운 접근이었다.

정부가 주도한 가족계획은 사회문화적으로 여러 면에서 상당한 사회적 변화를 끌어낸다.

우선 출산과 낭만적 사랑의 분리를 통한 기존의 자연적 순응이라는 자녀에 대한 시각을 바꾸게 하여, 계획출산을 통한 여성의 주체화에 이바지하게 된다. 출산 조절이란 여러 피임방법의 선택이자 동시에 이를 통한 가계 수입의 반영, 가정 경제의 상황을 종합 판단하여 지출해야 할 비용을 추산해 모든 가정에서 삶을 예측하고 계획할 수 있는 자각이 생긴 것이다.

또한, 전통적인 대가족제도가 붕괴하며 소가족으로 분화되고 기존 생산의 터전이었던 농촌에 대한 고착보다는 일자리를 떠나 도심 등으로 나가는 이주가 자유스러워졌다.

당시 군사정부는 경제개발계획을 발표하며 산업화를 통한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주력한다. 공장 노동자를 양성하기 위해 농촌의 인구를 도심으로 끌어들여야 하며 동시에 산업노동자로서 자질 향상이 필요하다. 한정된 자원을 동원해 빠른 변화를 이끌기 위해 여러 정책이 구상되는 바, 기존 가족 체계의 재구성이 요구되고 가족계획이라는 정부 사업이 시행된다.

이러한 변화는 여성의 주체화를 통해 자유와 권력에 대한 변화가 생기게 되고 결국 여성의 권리가 신장돼야 하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가게 된다.

가족계획이라는 인구조절정책이 제공한 피임이라는 방법이 임신과 출산의 통제뿐만 아니라 출산과 양육이라는 기능적 도구에서 벗어나, 여성이 사회 전반으로 전문적 지식을 갖춘 가족에 관한 역할 변화가 생기고 기존의 관점을 벗어난 과학적 방법과 여성에 대한 역할의 강화로 인한 가족 내 여성의 입지가 강화된다.

가족계획이 던져준 사회적 변화는 산업화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대가족의 해체를 통한 소가족으로의 재편과 더불어 여성에 대한 주체적 시각이 만들어지고, 출산이라는 자연적 현상이 계획이라고 하는 의지의 대상으로 변화하게 된다.

흥미로운 현상 중 하나는 도심의 중산층에서 시작해 근대화의 상징처럼 시작된 출산 조절이 농촌으로 확산해 나가면서 일부 피임제 등이 가난한 부류에 집중적으로 배포됐다는 점이다. 이는 근대 우생학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이제 국가에 의한 인구조절정책이 감소가 아닌 증가로 돌아섰고 저출산에 대한 사회적 부작용이 인구 노령화와 겹치면서 우리의 숙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할 때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산업화와 인구에 대한 감소, 그리고 노령화를 거치고 있다. 비용은 증가하고 생산은 감소하는 현상이 언제냐일 뿐이지 선택이 아니다.

우선 내가 나이가 들었을 때 나를 부양해야 할 것은 소가족 사회에서 내 가족이 되기에는 감당할 수 없는 부담으로 다가온다.

결국, 북유럽이나 일부 선진국에서 채택한 방법은 국가가 부양에 대한 책임을 분담하거나 책임져야 하는 사회적 체계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인구의 감소를 인위적으로 막기에는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다. 이미 사회 자체가 돌이킬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고 그렇다면 국가에 의한 이전과 같은 계몽의 역할을 기대할 수 없다.

부양에 대한 비용 또한 사회가 고민해야 할 숙제다. 기술의 발전을 통한 효율화와 요양병원, 요양원 등의 복지시설에 대한 개선과 사회적 투자가 필요하다.

인구 감소가 국가의 정책이었다면 이제 노령화와 인구 감소로 인한 사회적 부담에 대한 해결 또한 국가가 정책적으로 고민하고 우리가 선택해야 할 몫일 것이다.

저자 조은주는 연세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명지대학교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생산과 재생산의 정치에 주목하면서 통치성의 맥락에서 가족 및 인구에 관해 연구하고 있으며, 통치-과학의 결합과 지식의 사회적 형성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주요 연구로 '인구의 출현과 사회적인 것의 구성', '인구의 자연성과 통치 테크놀로지', '인구통계와 국가형성', '비서구의 자기인식과 역사주의’ 등이 있다.

2018년 8월 창비에서 처음 책을 펴냈다.

[기고자 소개]

이태윤
자유와 방임을 동경하고 꾸준한 독서가 아니면 지능이 떨어진다고 믿는 소시민이며 소설과 시에 난독증을 보이는 결벽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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