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기기 세평

■ 의료기기 세평

"의료기기 국제 조화의 득과 실"

▲ 박 선 주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법규위원회 운영위원
한국알콘 RA&MA 전무

국내 의료기기 생산실적은 2018년 6조 5천억원을 넘어서며 매년 기록 경신을 거듭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문재인 케어의 영향으로 의료기기 사용량이 증가하고 있으며 국민의 의료 접근성 또한 향상돼 좋은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헬스케어 산업 지원 의지가 의료기기산업계에 긍정의 힘으로 작용해, 회사마다 투자나 제품 개발에 대한 동기를 고양시켰다.

2018년 7월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의료기기 규제혁신 현장 방문을 통한 대통령님의 의지 표명이 '의료기기산업 육성 및 혁신의료기기 지원법'과 '체외진단의료기기법' 제정에 도달케 하는 원동력이 됐다. 뒤이어 올해 3월 청와대 김연명 사회 수석의 의료기기산업계 간담회는 이런 확신과 지속적인 정책 지원의 든든한 약속이었다.

정부 지원에 호응이라도 하듯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은 국제의료기기규제당국자포럼(IMDRF) 가입과 더불어 차기 의장국으로 선출됐다. 세계적으로 우리 규제 당국의 우수성을 인정받은 것이며 아시아 의료기기규제조화 기구(AHWP) 의장에 이어 또 다른 역사의 획을 긋게 된 일이다.

규제의 국제조화를 통한 우리가 얻는 득(得)은 무엇일까?
첫째는 수출에 유리하다. 수출을 주력으로 하는 회사 입장에서 조금씩 다른 각 나라의 규제를 모두 준수하기 위해 들이는 시간과 비용은 큰 부담이 될 것이다. 국제조화의 기초는 국제공통기준규격의 적용이다. 상호 조화된 국가는 서로 같은 기준으로 제품을 생산해 상호 인정을 받을 수도 있고 혹은 품질관리기준 인증의 경우 한 번의 실사로 협약에 가입된 국가의 인증을 동시에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제품 안전에 대한 기대를 높일 수 있다. 규제선진국이라는 유럽, 북미권의 주도적 참여로 규정이 설정되는 바, 기준 규격은 합리적 범위 내에서 최고 수준으로 설정돼 과학적 검증과 논의를 통해 최신 규격을 국내 산업에 적용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또, 과학에 근거한 실증자료와 산업계 그리고 규제자의 합의를 통한 치열한 연구를 통해 뒷받침될 것이다.

세 번째는 제품 출시 예측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규제 당사자와 관계자에게 일관되고 집중된, 그리고 효율적인 과학 기반의 규제 정책개발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지속적인 국제 협력을 통한 적절한 수준의 관리와 감독은 환자를 위한 제품 품질, 안전성 및 효능을 최적으로 제어하도록 규제 당국 및 업계 자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게 한다.

그렇다면 실(失)은 어떤 것이 있을까?
첫째는 비용의 증가다. 국제조화가 지향하는 안전성을 충족하기 위한, 최신의 규제과학이 적용된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당연히 상당한 비용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최근 제조소 인증을 위한 IMDRF의 의료기기단일심사프로그램(MDSAP)이라는 기업 인증을 받기 위해 기존 개별 인증보다 수 배의 인증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비용뿐 아니라 인증을 위한 규제담당자 또한 이전보다 많이 투입해야 한다. 업체 입장에서 한꺼번에 여러나라의 인증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피하고 싶을 정도의 고강도 검증이 이뤄져 모든 회사에 이를 적용하는 데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둘째, 수출보다 수입이 많은 우리나라의 경우 무역 경상 수지의 적자를 가중시킬 수 있다. 의료기기는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특성으로 인해 정보의 비대칭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다. 오랫동안 수출경쟁력을 갖춘 유럽이나 북미보다 우리나라는 경쟁력이 약할 수 밖에 없고, 이는 선진국 제조 의료기기의 국내 진입을 용이하게 할 것이다. 국내 제조산업의 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 운영에 상당한 배려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국내 시험·인증기관이나 규제 전문가의 기반이 약화될 수 있다. 국가별 특이 요구 사항이 없는 경우, 추가 시험 검사에 대한 수요는 감소할 것이다. 또 국제조화로 인해 규제과학 분야의 해외 의존도가 높아진다면, 장기적으로 관련 인프라의 구조 조정을 유발할 수 있다.

득과 실의 아름다운 평형이란 무엇일까?
최근 4차산업혁명 적용 기술에 대한 새로운 규제의 틀이 만들어지고 '선 진입-후 평가'와 더불어 실세계자료(RWE) 또는, 모델링과 시뮬레이션 등을 통한 안전성 및 유효성 입증 방법이 소개되고 있다. 규제혁신을 위한 정부의 노력 또한 다변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산업계의 의견은 다양하다. 그 중에는 국제 조화에 대한 노력보다 해외 인증의 경우 조건없이 인정하고 그대로 도입되길 바라는 민원들도 있다.

국제 조화라 함은 규제를 동일하게 하여, 아무런 규제 장벽 없이 마음대로 넘나들도록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국가 간의 차이와 다름은 존재하고, 이를 뒷받침할만한 제도적 보완이 이루어져야 한다. 모든 국가에서 규제를 하는 이유는 유사할 것이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 적절한 비용으로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 자국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 등과 같은. 그러나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고, 그에 따라 적용 방식과 운영은 달라질 것이다.

여러 가지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많은 국가들이 국제 조화에 동참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중이다. IMDRF 의장국으로서 대한민국 또한 이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결국 국제 조화된 규제와 기준의 도입은 국내 현실에 맞는 단계적, 선별적 수용으로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빨리빨리'라는 정신무장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루어 왔다면, 이제는 장기 계획을 가지고 차근 차근 내실을 다져나가는 것도 살펴봐야 할 것이다. 이 과정 중에서 의료기기 주요 수출국과 제품을 반영한 지원 측면에서의 국제 조화는 좀 더 빠르게 받아들여 제조업체를 지원하고, 국내 사정을 고려해야 할 국제 규제 조화는 탄탄한 준비와 함께 관련 이해 당사자들의 합의를 거쳐 마련돼야 할 것이다. 규제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우리의 선택이 미래의 우리나라에 경쟁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아울러, 우리 산업계에서의 선택적 전략 또한 고민하고 준비해야 할 것이다.

(본 투고내용은 필자의 개인적 의견으로 소속 회사의 공식 견해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

기사제공 : 의학신문·일간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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