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중문화 속의 의료기기 이야기 - 5회

■ 대중문화 속의 의료기기 이야기 - 5회

"MRI, 의료기기의 종결자(Terminator)"

▲ 임 수 섭
LSM 인증교육원 대표

'터미네이터'. 아놀드 슈왈제네거 주연의 인공지능의 반란을 소재로 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연출한 SF 액션 영화로, 동 배우와 감독 제임스 카메론을 각 분야의 최고 위치에 올린 작품이다. 이 영화는 당대 최고 인기를 누렸을 뿐만 아니라 아포칼립스와 디스토피아적인 미래관을 잘 표현해 시대적 화두와 작품성까지 붙잡은 걸작이다. 1편은 저예산의 B급 영화였으나, 감독의 탁월한 역량으로 SF, 액션과 스릴러를 완벽하게 융합시킴으로써 시대를 선도한 영화가 됐다. 당시 최첨단 기술이었던 3D 컴퓨터 그래픽을 도입한 2편 역시 역대 최고의 SF 액션 영화라는 평을 받았고, 또한 1편보다 나은 2편은 나오기 어렵다는 속설을 완벽하게 불식시킨 몇 안 되는 작품이다.

이 영화 시리즈의 상징이자 '진짜 주인공'은 바로 작품명인 터미네이터로 작중 모델명은 T-800(3편에서는 T-800에서 소폭 업그레이드된 모델인 T-850)이다. 1편에서는 주인공인 사라 코너와 미래로부터 온 남편인 카일 리스를 죽이려는 냉혹한 기계 암살자였으나, 2편부터는 사라 코너와 그녀의 아들인 존 코너를 지키는 수호자로 변신한다.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분한 이 T-800은 인간 편이 된 2편부터 3편과 5편까지 그 이상의 강한 적들과 맞서게 되는데, 형태가 변형하는 액체 금속 터미네이터인 T-1000, 그것의 업그레이드형으로 체내에 다양한 무기를 내장하고 있는 T-X 그리고 이들의 능력을 수단계 뛰어넘는 극미세 나노 입자로 구성된 T-3000이 그들이다. 특히 공격을 받고 본체로부터 파편으로 떨어져 나가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해서 본체에 예속된 것 같은 T-1000과 달리, T-3000은 각자 자율성을 가진 극미세 나노 알갱이들이 모여서 이뤄진 군체의 모습을 보여준다. T-1000처럼 외형을 다르게 바꿀 수 있는 것은 기본이고, 분해-재조합이 자유롭고 신속하며, 몸을 무기로 변형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강력 폭발을 가진 공격으로부터 복원되는 것도 빠르다. 이 복원은 T-1000이 무너진 형태를 재구성하는 걸 넘어, 몸체 일부가 소실되어도 원상 복구시키는 수준이다. 즉, 물리적 파괴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나 무적 같은 T-3000도 약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자장(磁場)이다. 왜냐하면 T-3000을 구성하는 무수한 수의 나노 머신들은 자기장을 기반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외부 자장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이용해 5편인 '터미네이터:제네시스'에서 성능상 열세인 T-800가 주변에 있는 자장을 일으키는 물건을 통해 T-3000에게 통쾌한 반격타를 날린 바 있으니, 그것은 바로 병원에 있는 'MRI' 의료기기의 이용이었다. 작중에서 T-800과 카일 리스는 MRI를 작동시켜 발생된 강력한 자장으로 T-3000의 나노 입자를 분산시킴과 동시에 MRI에 붙잡히게 함으로써 T-3000의 추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여기서 나온 MRI는 자기공명영상(Magnetic Resonance Imaging)의 약자로 자기장을 발생하는 장치에 인체를 넣고 고주파를 발생시키면 신체의 수소 원자핵이 공명하게 되는 핵자기공명 원리를 이용한 의료기기이다. MRI는 이때 나오는 신호의 차이를 측정하고 컴퓨터로 재구성해 진단 영상을 만드는데, 이 자기공명영상은 X선을 사용해 인체에 유해한 전산화단층 엑스선 촬영 영상(CT)과 달리 신체에 거의 무해한 게 특징이다.또한 CT가 횡단면 영상이 주가 되는 반면, MRI는 진단 방향에 있어 더 자유롭고, 혈액의 산소량을 측정할 수 있기 때문에 뇌혈류 정보를 얻을 수 있어 해부학적 영상에 치우친 CT에 비해 생화학적 정보까지 획득이 가능하다. 이런 MRI는 인류사에서 손꼽히는 발명품으로 1952년에 노벨물리학상을, 2003년에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이력이 이를 증명해 준다. 무엇보다 MRI는 현대 의료에서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중추 역할을 하고 있고, 의료기기산업과 최첨단 의료기기를 다룰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간판 의료기기 중 하나이다.

이처럼 MRI가 중요한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국내 의료기기 규정상 인허가 등급은 2등급으로 의료에서 차지하는 위상 대비 인허가 등급은 높지 않은 편이고, 이는 주요 선진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다. 그 이유는 자장의 낮은 위해성과 더불어 제품을 통해 획득된 진단 영상에 대한 최종 판독을 의사가 하는데 기인한다. 만약 획득된 영상 속에서 질병 유무나 이상 부위를 AI 등을 통해 제품이 스스로 찾아낸다면 3등급을 뛰어넘어 4등급이 되거나, 식약처 신개발의료기기 승인과 보건복지부 신의료기술평가까지도 요구될 것이다. 과거 MRI는 한 번 촬영에 100만 원이 넘는 고가 진단 장비였다. 하지만 기술 발달, 국민소득향상, 병원 수익사업 강화 및 건강보험 영역 확대 등이 맞물리면서 MRI의 보급률이 2000년대에 들어서 급격히 늘어났고, 2006년 이후에는 더 높은 자장과 해상력을 가진 초고가의 3T(3 Tesla) 제품이 가파르게 늘어났다. 하지만 이에 따른 환자 진단 비용, 건강보험 수가 지출의 상승과 함께 많은 병원이 성급히 다량의 제품을 도입하면서 제품에 대한 부실 관리가 이슈로 떠올랐다.

이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보건복지부가 2003년부터 도입한 제도가 바로 '특수의료장비' 관리 제도이다. 특수의료장비는 MRI, CT, 유방촬영 엑스선 장치 3종으로 시작해, 2011년에는 혈관조영장치, 투시장치, 이동형 투시장치(C-Arm 등), 방사선치료계획용 CT, 방사성치료계획용 투사장치, PET, PET-CT, 체외충격파쇄석기까지 8종이 추가됐다. 앞으로도 건강보험 보장 영역 확대 추세에 따라 특수의료장비로서 관리될 제품은 계속 늘어날 예정이다. 이 규정에 따라 MRI는 인체 모의 물질(팬텀)을 통한 해상력 시험 등 시험 기준과 주기 등 세부 관리 체계가 수립되고, 최초/이전 설치 시와 1~3년 주기에 맞춰 성능시험과 제품관리 서류의 적절성 검토를 받아야 한다. 이는 해당 의료기기의 구입비용, 진료건수, 보험 청구액, 사용 기간, 의료에서의 비중 그리고 현실적인 관리 가능성 등을 감안해 가장 중요한 장비를 우선 선정하는 과정에서 확립됐고, 그 중심에 MRI가 있다.

"You are terminated." 이는 우리 편 터미네이터가 적 터미네이터를 '완전히 처치(Terminate)'할 때 말하는 유명한 대사이다. 무수한 질병을 잡아내는, 현대 의료 장비의 간판이자, 진단 장비의 끝판왕인 MRI에게 이보다 어울리는 말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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