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중문화 속의 의료기기 이야기 - 1회

■ 대중문화 속의 의료기기 이야기 - 1회

"아이폰으로 보헤미안 랩소디를 듣다"

▲ 임 수 섭
LSM 인증교육원 대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영화 시장에 놀라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음악 영화라는 비주류 장르인 데다가, 특정 마니아에 편중되는 음악 그룹과 그것의 리더에 대한 이야기가 국내에서만 97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은 것은 대단한 일이다. 아카펠라, 오페라, 하드록이라는 이질적인 장르를 환상적으로 융합해 프레디 머큐리의 천재성이 드러난 6분짜리 대작 'Bohemian Rhapsody', 프레디 머큐리의 능수능란한 보컬과 현란한 피아노 연주가 인상적인 최고의 드라이브 곡 'Don't Stop Me Now', 'Billie Jean'도 울고 갈 만큼 중독적인 베이스 기타 리듬이 일품인 'Another One Bites Dust' 등 이 영화로 인해 그동안 묻혀있었던 이 그룹의 명곡들이 다시 각광 받는 것을 보면서 오래 전부터 그들의 음악을 즐겼던 필자는 이 좋은 걸 이제 알았니?하며 소소한 웃음을 짓기도 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록그룹 퀸의 메인 보컬 프레디 머큐리는 에이즈(AIDS, 후천성면역결핍증)로 1991년 불꽃 같은 생을 마감했다. 에이즈가 처음 발견된 80~90년대만 해도 극심한 고통 속에서 단기간 내에 목숨을 잃게 되는 무서운 불치병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의학의 진보로 인해 에이즈가 걸리더라도 수십 년 이상 살 수 있게 됐고, 실제 한 유명 농구 스타는 질병 발병 이후로 26년을 넘게 사는 '마술 같은' 사례를 보여주기도 했다. 즉, 에이즈는 더 이상 20세기의 흑사병이자 무서운 천형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관리하면서 살 수 있는 질병이다.

최근 퀸의 주옥같은 노래를 아이폰으로 듣다가 또 다른 한 사람이 생각났고, 그가 앓았던 질병이 떠올랐다. 세계 최초의 스마트폰인 아이폰을 비롯해 아이팟, 아이맥, 맥북에어 그리고 최근 인기몰이를 한 에어팟까지 기능과 디자인에 있어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함으로써 21세기 혁신의 아이콘이 됐고, 자신이 창업한 애플을 세계 최고의 IT 기업으로 만들었던 스티브 잡스와 2011년 그를 죽게 만든 췌장암이 말이다.

생명을 뺏는 난치 질환의 대표적 사례가 암이다. 그 중 췌장암은 치료가 어렵고 전이 속도까지 빨라 발병하면 치료해도 5년을 전후로 거의 목숨을 잃고 만다. 이제 어느 정도 치료와 관리가 가능해진 에이즈와 달리, 췌장암은 여전히 현 인류의 능력으로는 정복이 힘들다. 이런 사실을 미뤄볼 때 에이즈의 치명성이 췌장암보다는 떨어진다고 볼 수도 있는데, 이 점으로 인해 10년 전에 필자는 짧게나마 고민에 빠진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의료기기는 1~4등급까지 나뉘고 인체에 미치는 잠재적 위해성(危害性) 등의 차이에 따라 등급이 올라간다. 그런데 췌장암을 진단하는 의료기기의 경우는 3등급에 불과(?)한 반면, 에이즈를 진단하는 의료기기의 경우는 췌장암보다 더 높은 4등급으로 분류되기 때문이었다.

즉, 질병의 전이 속도도 경이적이고 발병 후 5년 내 생존율이 11%에 불과한 췌장암을 진단하는 의료기기가 규칙적인 약물 복용과 관리 속에 주의 사항만 잘 지키면 평균 수명까지도 살 수 있는 에이즈를 진단하는 의료기기보다도 등급이 낮다는 것은 일견 이해되지 않았다. 둘의 등급을 바꿔야 하거나, 치사 여부를 감안해 둘 다 4등급이 돼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고민은 이들을 진단하는 의료기기의 특성을 이해하는 순간, 쉽게 풀려버렸다. 에이즈를 진단하는 의료기기와 췌장암을 진단하는 의료기기는 둘 다 '체외진단분석기용 시약(이하 체외진단시약)'이다. '체외진단시약'이란 인체 유래 시료를 검체로 검사함으로써 질병 진단, 예후 관찰, 혈액 또는 조직 적합성 등의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체외에서 사용되는 의료기기를 말한다. 이런 '체외진단시약'은 인체에 대한 전반적인 위해성에 따라 등급을 나누는 일반 의료기기와 달리 '개인 위해성'과 '공중 보건 위해성'을 둘 다 고려해 등급을 결정한다.

그러므로 같은 수준의 치명적인 위해성을 가지는 두 가지 다른 질병을 진단하는 체외진단시약이 있을 때, 두 질병 중 더 전염성이 강한 질병을 다루는 체외진단시약이 있다면 그것의 등급이 다른 것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췌장암의 경우, 아무리 위험하더라도 그 위해성이 한 개체, 한 개인에 국한된다. 이와 달리, 에이즈는 전염성이 강해 개인뿐만 아니라 개인 외의 타인 즉, 다수의 공중 보건에도 해가 된다. 다만, 칵테일 요법 등 현대 의학 기술의 발달로 인해 사망률이 비약적으로 준 것(2016년 기준11.8%)뿐이다. 체외진단시약의 놀라운 능력은 여기서부터 드러난다. 생명까지 앗아가는 질병에 대한 혈액이나 세포 같은 인체 내 미량의 샘플만으로 빠르고 간편하게 진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X-Ray, CT, MRI, 내시경, 수술용 로봇같이 머릿속에 흔히 떠오르는 일반적인 '체내진단의료기기'는 의료기기가 몸에 적용되는 시간이 길고, 절차가 복잡하며, 개복과 같이 인체에 부담을 주는 등 훨씬 불편하고 부작용이 많다.

또 다른 체외진단시약의 장점은 각 개인과 그가 가진 질병에 대해 유전자 분석을 가능케 함으로써 이에 맞는 치료법을 각 개인에 맞게 개발할 수 있게 해주는 '유전자분석 맞춤형 진료 혹은 치료'를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 역시 이것을 통해서 자신의 췌장암을 치료하려고 했으나 맞춤형 치료제가 나오기 전에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당시 유전자분석 맞춤형 치료의 잠재력을 간파한 스티브 잡스는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나는 유전자 분석으로 암을 치료한 최초의 사람이거나 이런 방법을 썼음에도 죽은 거의 마지막 사람 중 한 명이 될 것이다"라고 말이다.

이처럼 놀라운 잠재력을 가진 체외진단시약은 안전과 효과(안전성과 유효성) 여부를 확인하는 방법이 일반적인 의료기기와 다르다. 전기 같은 동력원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기 안전이나 전자파 적합성에 대한 시험이 필요 없고, 체내에 삽입, 이식되지 않기 때문에 생체 적합성(생물학적 안전성) 시험도 요구되지 않는다. 반면, 해당 질환이 있는지(양성), 없는지(음성) 여부를 명확하게 알려줄 수 있는 능력(분석적 성능과 임상적 성능)에 대한 시험을 필요로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체외진단시약은 눈부신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가까운 시간 내에 피 한 방울로 모든 질병을 확인할 수 있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만약 프레디 머큐리와 스티브 잡스가 10년만 더 늦게 태어났다면 이들은 지금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만큼 그들이 창조한 '자유로운(Bohemian) 음악'과 '똑똑한(Smart) 기재(器財)'도 그만큼 늦게 세상에 나왔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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