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년도 치료재료원가조사에 관한 업계 제언

■ 3차년도 치료재료 원가조사에 관한 업계 제언

협회, ‘원가조사’ 방식의 가격조정체계 근본적으로 반대
부득이 가격조정시 일정기간 집행 연기 요구

 

▲이상수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보험분과위원회
원가조사 가격인하 TF위원장

어김 없이 또 한 번의 원가조사 기반의 가격조정이라는, 업계 입장에서는 하나의 커다란 폭풍이 다가오고 있다. 정부는 지난 3월 설명회를 통해 평균 8.33%라는 가격 인하율을 내놓았다. 지난달 27일 정부-업계간 간담회에 이어 4월 30일 이의신청 제출 등 관련 일정을 서두르고 있다. 정부는 올해 안에 원가조사 기반의 가격조정 작업을 모두 마무리하고 내년부터는 인하된 가격을 적용할 계획으로 보인다.

협회를 비롯한 국내 의료기기 업계도 보장성 강화 수요에 따라 늘어나는 재정 압박에 맞서 건강보험 재정의 건전성을 유지하려는 정부의 고민을 모르는 바 아니다. 다만 그 해결수단으로서의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데 있어 합리성과 투명성, 그리고 업계와의 진정성 있는 소통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 협회의 기본입장이다. 이런 입장은 지난 2010년 F군 대상 원가조사 이래 꾸준히 정부에 전달됐다.

정부 정책, 합리성·투명성·진정한 소통 하에 추진돼야

물론 정부 측에서도 이의신청 기간 중 업계와의 대화를 통해 의견 청취에 시간을 할애했고, 향후 개별 군의 상황에 대해서는 치재위 회부 등의 기회를 제시하는 등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과거 상황과 비교할 때 매우 고무적인 변화로 평가된다. 하지만 업계가 본원적으로 바라는 것은 원가조사라는 가격 조정체계 자체에 문제가 있으므로 대안적 조치를 도입해달라는 것이다. 또한, 이미 시행 중인 원가조사에 대해서는 그 과정에서의 일방적, 자의적 집행이 아닌 관련 이해당사자들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도록 소통채널에 신경을 써달라는 것이다.

이미 업계는 지속적인 원가 상승요인과 시장 유지 및 개척을 위한 연구개발 비용 투자로 인한 경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는 과거에 진행된 6개군 대상의 원가조사와의 형평성을 들어 앞서의 6개군보다 시장 규모도, 개별 회사의 규모도 작은 나머지 7개군에 대해 동일한 방식의 원가조사를 실시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것인지, 또한 형평성이 있는 것인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의료기기는 그 속성상 라이프사이클이 매우 짧으며, 보다 개선된 제품을 계속 내 놓지 못한다면 시장에서 도태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또한, 제품의 보관, 유통, 전달 등 일련의 과정에서 인적, 금전적 비용이 소요되며 그 규모는 각 제품 그리고 군별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현재 정부가 제시하고 운영 중인 원가조사 기반의 가격조정책은 이런 업계의 현실을 충분히 고려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

지난 30일 이의신청 마감일에 맞춰 전달한 협회 의견서를 바탕으로 정부 측 원가조사에 대한 업계의 입장과 현실을 이 자리를 빌려 소개하고자 한다.

일방적 가격인하, 업계 현실 도외시한 조치

첫째, 의료기기 원가조사에 따른 일방적 가격인하는 기업의 혁신과 의료기기 산업의 발전을 저해하고 의료기기 업계의 경영 현실을 도외시한 조치다.

기업은 경쟁 구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연구 개발과 원가 절감을 위한 노력과 투자를 끊임없이 하게 된다. 이를 통해 국가의 사회경제 발전과 국민 생활 수준 개선에도 공헌하는 긍정적 의미가 있다. 연구 개발과 원가 절감은 기업의 생존 수단 이상의 사회적 의미가 크다는 뜻이다. 그리고 정부는 기업의 혁신을 돕는 정책적 토대를 마련할 책임이 있다. 정부의 모든 정책은 기업의 연구개발과 원가절감을 위한 노력의 가치를 인정하고 이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도입되고 시행돼야 한다.

하지만 원가조사 기반의 가격조정은 이런 기업의 원가 절감 노력을 오히려 제품 가격 인하를 위한 근거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을 세계 7대 의료기기 강국으로 만들겠다는 정부의 기본적인 정책 방향과도 역행하고 있다. 국내 의료기기 업계의 매출 대비 평균 연구개발비 비중은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자료 기준으로 약 9.07%이다. 그리고 정부가 이번에 제시한 평균 가격조정률은 이에 육박하는 8.33%다. 연구개발 없는 의료기기 산업의 존속을 상상할 수 있을까.

2013년을 기준으로 지난 10년간 물가상승률이 약 33.1%에 달하지만, 치료재료 상한금액은 거의 인상되지 않고 깎이기만 하고 있다. 의료기기의 가치는 단순히 제조원가나 수입원가로만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의료기기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훈련 기회의 제공, 시의 적절한 배송 및 필요한 장비의 제공 등 다양한 서비스를 포함하는 것이므로 단순히 원가만을 근거로 가격을 산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의료 서비스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행위수가가 지난 10년간 꾸준히 인상돼 왔음을 보더라도 의료기기의 상한금액이 반대 방향으로 나가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업계의 치료재료 상한금액, 법적 보호받아야

둘째, 원가조사에 따른 상한금액 조정 조치는 현행 법령 하에서 그 근거가 미약하다.

현행법상 치료재료 상한금액은 일종의 재산권적 성격을 가진 법적 지위로서 헌법적 보호를 받고 있다. 약제의 상한금액뿐 아니라 치료재료의 상한금액도 근거법령에 의해 보호되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사적 이익이며 재산권적 기본권에 해당한다. 이러한 기본권의 제한은 반드시 법률에 근거를 둬야 하며 치료재료 상한금액의 조정 또한 법률에 근거해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예측가능성의 문제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재산권적 기본권에 해당되는 의료기기 상한금액을 조정하기 위해서는 법적 근거는 물론, 하위 법령에 위임하는 경우 조정의 요건, 범위 등이 정확하게 명시돼 상위명령으로부터 어떤 경우에 어느 정도 인하가 될 것인지를 대강이라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약제 상한금액의 조정에 비해 치료재료 상한금액의 조정은 그 법률적 근거가 상대적으로 매우 미약하므로 관련 법령의 정비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인정배수 및 가격조정률 산출 등 제반의 과정에 대해서도 법적 근거가 없이 임의적으로 산정되고 추진되기는 마찬가지다. 현재의 가격인하 방식인 “제조/수입원가에 임의적인 배수를 적용해 산정한 인정상한금액을 토대로 평균인하율을 산출해 이를 중분류별로 일괄 조정”하는 방식은 법령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이해당사자간 논의와 합의에 따르지 않은 것이다.

정부, 인하율 품목별 적용시 현 상한금액 초과금액 인정해야

셋째, 법적 근거를 차치하고라도, 상한금액 적정성 평가 과정에서 여러가지 모순점들이 확인된다.

먼저 “인정상한금액은 현 상한금액을 초과하지 못한다”는 상한금액 조정기준안은 평균값을 왜곡하고 있다. “품목군별 평균조정률”을 중심으로 가격조정률을 산출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평균조정률 산출의 전단계인 품목별 상한금액 조정률 산출과정에서 인정배수 적용시 현 상한금액을 초과하게 될 제품의 인정 상한금액은 배제된다. 이는 전체 시장상황을 반영하는 평균값을 왜곡하는 결과를 낳는다.

정부 측 공문을 보면 이번 원가조사는 “제조(수입)원가 및 유통마진을 감안해 건강보험 치료재료 상한금액을 적정 수준으로 조정”함을 그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현 상한금액을 초과해 인상이 필요한 제품에 대한 ‘적정한’ 인상은 고려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번 원가조사는 일방적인 가격인하를 위한 정책적 선택이라고 업계가 주장하는 것이다.

업계 특성 반영한 치료재료의 도매마진율 적용해야

넷째, 상한금액 조정기준안에 적용된 도매마진율은 의료기기 업계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인정상한금액 도출을 위해 정부 측이 차용하는 도매마진율은 한국은행 발표 ‘2013년 기업경영분석’ 중 ‘G46. 도매 및 상품중개업’의 매출총순익/매출원가 비율인 17.60%이다. 하지만 이 도매마진율이 적용된 산업을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상품 중개업, 산업용 농축산물 및 동물 도매업, 음·식료품 및 담배 도매업, 가정용품 도매업 등 의료기기 산업의 유통 현실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치료재료 도매상들, 즉 의료기기 판매업자들의 경우 의료기기 관련 법령이 허용하는 영업활동의 일환으로 일정한 범위 내에 보건의료인들에 대해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허용되고 있는 점, 그리고 의료기기법 제18조(판매업자 등의 준수사항) 및 의료기기법 시행규칙 제25조(판매업자·임대업자의 의료기기 품질 확보방법 등)에서 요구하는 판매업자의 준수사항을 지키기 위한 인력과 비용도 요구된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치료재료의 특성을 반영한 도매마진율 값을 적용해야 함은 명확하다.

또한, 치료재료의 국내 유통구조는 중소기업 중심의 다품종 소량생산이라는 의료기기 산업의 특성으로 인해 제조·수입업체에서 바로 요양기관으로 납품되는 것이 아니고 중소 도매업체, 대리점, 간납업체 등 여러 단계를 거친다. 이런 제반의 상황은 한국은행 기준의 도매마진율이 치료재료 업계의 원가산정 기준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7개군 가격인하, 업계 손실 큰 반면 재정절감 효과 ‘미미’ 전망

마지막으로, 이번 7개군 상한금액 조정안은 시장 내 존립이 불가능할 정도의 손실이 우려되는 업계의 희생에 비해, 정부가 기대할 수 있는 건강보험 재정건전성 및 지속가능성 개선 효과가 미미하다는 점이다.

이번 원가조사의 대상인 7개군의 청구량 총액은 전체 치료재료 지출액의 1/4에 미치지 않으며, 건강보험 재정 규모 전체로 볼 때도 0.9% 정도 수준에 불과하다. 또한, 이번 원가조사를 정부의 조정안대로 마무리 짓더라도 이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재정 절감액은 산술적으로 전체 건강보험재정의 0.1%를 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반해 해당 7개군에는 360개 업체가 약 4,500억 원 수준의 제한적인 시장 안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며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정부가 제시한 평균 조정률은 8.33%이지만 중분류에 따라 동일 적용되는 개별 조정률을 들여다보면 최대 60%대의 인하율까지 확인된다. 불과 0.1%도 안 되는 재정절감을 위해 수많은 중소 규모 업체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 묻고 싶은 것이다.

맺음말

협회와 업계는 정부 측의 원가조사 기반의 가격조정 정책과 그 시행과정 전반에 대한 문제 제기와 함께, 여러 의견과 대안을 반복적으로 제시하고 이에 대한 정부 측의 수용을 요청해 왔다. 우선 원가조사는 상한금액 인하 수단으로 시행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다.

이런 방식을 정부에서 강행해야 한다면 적어도 일방적인 인하가 아닌, 시장상황에 따른 ‘적정한 인상’도 함께 고려돼야 함도 피력해 왔다.

그리고 조정률 산정과정에서 도매마진율은 최소한 의료기기 업계의 특징을 어느 정도라도 반영한 것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점과 정책시행 과정에서 산업, 개별 군 그리고 기업이 가진 본연의 특수성 및 영세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반영이 이뤄져야 함도 그 의견들에 포함된다.

또한, 치료재료에는 국민의 건강을 위해 일부 의약품에 적용되고 있는 ‘퇴장 방지’의 개념조차 인정되지 않고 있다. 약제의 경우 환자의 진료에 필수적이나 채산성의 문제로 생산 및 수입이 기피되는 제품의 경우 퇴장방지 의약품으로 지정해 비용 및 원가보전, 약가 추가 제공 등 정책적 배려를 해주고 있다. 하지만 치료재료의 경우 비슷한 사례가 있음에도 그에 대한 ‘형평성’ 있는 정책적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치료재료, 퇴장방지 제도 등 정책적 배려 필요

서두에서 밝혔듯이, 정부가 업계와 진정성 있는 대화 의지를 가지고 실질적으로 정책에도 반영하고자 하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일원으로서 볼 때 매우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의료기기 업계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세계 최상급의 제품을 선보여 환자들의 건강과 안전에 기여하고, 나아가 세계 시장을 개척해 대한민국의 존재감을 드높이고자 고군분투하는 현실에 대해 조금만 더 귀를 기울여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적어도, 시장경제의 대원칙 아래서는 기업의 기본적인 경영방식이자 생존원리인 원가절감을 부정하는 원가조사 기반의 가격조정은 채택돼서는 안 되는 정책이며, 가격의 사후 조정이 필요하다면 그 세부시행에 있어 보다 합리적인 대안 선택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지면을 통해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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