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 진료로 포괄하기 힘든 영역에 대한 비급여 유지는 필요

협회 보험정책위원회 위원
엠디웍스코리아 대표

[의료기기협회보_제96호_12월] 지난 의료기기협회보 11월호에서 대선후보의 보건의료공약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다. 이제는 3명에서 2명의 후보로 줄어들었지만, 기사 내용의 핵심은 비급여의 급여로의 전환을 통한 보장성 강화에는 세 후보 모두가 찬성한다는 것이다.

3대 비급여로 불리는 선택진료, 상급병실, 간병료에 대해, 당장 실시와 점진적 추진의 차이만 있을 뿐 급여화 방향에는 모두 이의가 없었다. 3대 비급여 외에도 보장성을 80% 이상 올리기 위해서는 현재의 비급여 항목 대부분을 급여화 할 필요가 있다.

돈 안내고 병원을 다닐 수 있게 해준다는 대선 후보들의 의견 일치는 바람직하고, 당연히 환영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건강보험 재정이 한정돼 있는 한은 급여화는 사용 제한이 필연적으로 수반된다.

예를 들어, 암환자의 항암제 선택에 있어, 1차로 처방할 수 있는 항암제가 있고, 이 1차 약제가 효과가 없거나 부작용이 있을 경우 2차 항암제를 쓸 수 있도록 하는 기준을 만든다. 물론 여기서 2차 약제는 1차 약제보다 훨씬 고가인 경우가 많다.

빤히 예상되는 부작용 때문에 1차약을 쓰지않고 바로 2차 약을 쓸 경우, 병원은 삭감을 각오해야 한다.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이 용납하는 한계에서 적정진료의 기준을 정하고, 기준에 따라 정해진 표준진료를 시행하도록 요양기관을 독려하고, 따르지 않을 경우 삭감이라는 무기를 들이댄다.

적정진료는 최선의 진료와는 다르다. 최선의 진료는 환자 개개인의 특성을 치료에 반영해 맞춤형 진료를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보험 재정이 허락하는 한의 적정진료를 강요하는 정부와 환자의 치료에 있어 최선의 진료를 하고자 하는 의료인들 사이에는 대립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 팽팽한 대립관계가 폭발하지 않고 긴장감을 갖고 균형을 유지하는 데는 비급여 영역이 존재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보장성을 강화해 전면 급여화를 실현한다는 공약을 무조건 환영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장성 강화의 그늘 밑에는 모든 환자를 치료해 주겠다는 명목 하에 그들을 프로크로테스의 침대에 눕히는 표준화라는 이면이 있다.

프로크로테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괴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잡아들여 자신의 침대에 눕힌 후, 침대보다 작은 사람들은 늘여서 죽이고, 침대보다 큰 사람들은 사지를 잘라서 죽였다고 한다. 정해 놓은 기준이나 틀에 매몰돼 그 외의 상황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에 빗대어 프로크로테스의 침대가 자주 인용된다.

단순히 표현하자면 적정진료는 기성제품과 같다. 평균적인 질병의 치료법으로 개인차를 반영하기 어렵다. 다리가 길거나, 몸무게가 많이 나가거나 팔이 짧은 등의 평균을 벗어난 개인에 대한 배려를 해 주기가 어렵다.

표준 사이즈가 아닌 사람들은 기성제품이 아닌 맞춤 제품을 통해 자신에게 꼭 맞는 제품을 가질 수 있듯, 표준 진료로 포괄하기 힘든 영역들에 대한 비급여 유지는 필요하다고 생각 된다.

건강보험이 프로크로테스의 침대가 되어 모든 환자들의 팔다리를 잘라내는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건강보험이 인정해 주는 치료법외의 다른 치료법들도 선택할 수 있는 의료소비자로서의 권리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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