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존 개스틸, 피터 레빈, 역자 장용창, 허광, 출판사 시그니처

시민의 이야기에 답이 있다

신고리 원자력 발전소가 건설 중에 원자력 안전에 대한 중장기적 발전을 위하여 건설 중단이 되고 시민들이 참여하는 협의체가 원자력발전에 대한 지속여부를 논의하였다. 이미 건설이 30%나 진행 되고 있던 터라 발전소 관계자들은 물론 인근 지역 주민 그리고 원자력 관련 학회는 즉각 반발 했고 이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제기되자 일본의 원전 사태를 바라본 국민의 판단은 혼란스러웠다.

이미 일본이 경험하고 지금까지 달리 방법이 없어 통제 불가능한 원자력에 대한 광범위한 오염은 일본 만이 아닌 주변 해역에 대한 방사능 오염을 피해를 주고 있던 터라 노후화되고 폐쇄적인 우리나라 원자력 역시 안심할 수만은 없었다. 

값 싼 에너지라는 원자력의 매력을 버리기에는 국민이 부담해야 할 광범위한 부담이 있으며 이런 거대한 결정을 누가 내려야 할지에 대한 주체가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대의민주주의는 국민의 선출에 의한 대표, 즉 정치인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한다. 하지만 결정과정에서 이해 당사자와 전문가 집단 이외에 달리 민의를 수렴 할 수 있는 기제가 없다보니 결국 그들만의 정책추진에 다수의 국민이 부담을 나누는 결과를 가지게 된다. 그렇다고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를 시도하기는 사회가 너무 방대해졌다.    

이때 들고 나온 대안 중의 하나가 모든 시민이 모여 공통된 주제를 함께 만나 서로 이야기하는 대 토론의 장이 마련되었으며 위원회 선발부터 최종 표결까지 내부의 토론을 통하여 결정하였다.

이전 우리에게 등장한 익숙지 않은 개념이 등장하는데 바로 숙의민주주의다. 숙의란 영어로는 'deliberation'으로 중심을 옮긴다는 어원을 가지고 있다. 숙의가 익숙한 곳은 배심원이나 위원회다. 하지만 숙의가 단순히 서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숙의란 여러 가지 행동 대안에 대하여 다양한 사람들의 견해를 살피고 결정된 대안에 대하여 실행 할 때 결과까지를 예상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주권을 국민이 갖는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사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란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의 전유물이었다. 논의의 시간을 단축시킬 수는 있지만 특정 계층에 대한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공익을 왜곡 할 수 있는 문제가 있으며 결국 다수의 국민에 입장을 대변 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숙의민주주의는 이해관계자가 아니고 전문가가 아니어도 일반 국민들이 모여 집단지성에 근거 자신들의 입장을 밝히고 최종 결정을 할 수 있다. 

미국도 1960년대까지 활발히 운영되다 냉전 시대를 맞이하며 전문가와 이해 당사자 혹은 로비스트에 의한 정책 결정이라는 느슨한 형태의 민주주의로 변환됐으며 결국 정책은 각 이해 당사자 간의 합의에 의하여 결정된 나눠먹기 식의 민주주의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세계적으로 숙의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대표적인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덴마크식의 합의 회의와 독일의 플래닝셀이다. 

덴마크 모델은 10~25명의 시민이 3개월에 걸쳐 8일 동안 숙의 토론을 2단계에 거처서 한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시민들은 두 번에 걸쳐서 주말마다 모여 토론할 주제, 절차, 함께 할 사람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질문의 목록을 만들고 해당 문제에 대한 이해관계자 가운데 본회의 발표한 사람을 선정한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나흘간 본회의가 열리고 전반부 이틀 동안은 여러 발표자들이 연단에 나서 전체 패널이 선정한 질문에 대하여 답변한다. 이 기간에 시민회의는 비공개 회의를 통하여 발표자들에게 추가 질문을 하고 각 사안에 대하여 토론한다. 후반부 이틀은 보고서를 작성하여 권고사항을 요약한다. 

가장 큰 특징은 합의회와 외부 자문의 분리를 통하여 일방적 이해관계를 배제하고 시민회의 구성원간의 토의를 통하여 가장 합리적 선택을 유도한다는 점이 있다.

독일의 플래닝셀은 1970년대 피터 디넬의 도시계획 정책 토론회에 참여 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기 위하여 약 25명의 시민 참가자 집단을 구상 했는데 이를 플래닝셀이라고 한다. 플래닝셀의 목적은 정책 이슈들에 대한 시민들의 선호도를 파악하기 위하여 만든 것으로 대중이 가지는 반응을 알아보고자 한다. 

보통 플레닝셀은 25명의 집단이 여러 개를 구성하여 각 집단에게 지정된 주제에 대한 설명과 발표의 시간을 갖는다. 독일의 경우 광우병이나 소비자 보호를 위한 정책 결정에 사용되기도 했으며 약 나흘간 여러 가지의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시민들의 의견을 청취한다. 

플래닝셀의 가장 큰 특징은 절차관리관을 두어 토론의 진행을 돕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수의 절차 감독관은 특정 감독관에 의하여 의견이 편향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하였다. 

역시 마지막으로 주최 기관들은 시민들의 결과물을 모아 시민 보고서를 만들고 이를 시민 대표회의의 검토를 거처 승인하는 것으로 한다. 

미국은 타운홀 미팅을 선호한다. 시작은 이렇다. 1999년 가을 약 3천명의 워싱턴 주민들이 앤터니 윌리암스 시장과 함께 하는 시민정상회의를 개최하였다. 이미 많은 이전 시장들의 계획에 지처 있는 시민들은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앤터니 시장은 달랐다 10여 명씩 테이블에 모여서 본인들의 의견을 토론하고 시장이 제안한 주제를 검토한다. 

각 주제에 대한 우선순위를 정하고 이를 중앙 모니터에 전달한다. 시민정상회담에서 정한 우선순위는 전략을 수정하고, 두 달 뒤 열리는 포럼에서 수정된 내용이 발표됨과 동시에 최종 계획안은 예산 수립에 반영된다. 시장은 자신의 공약을 지켰으며 대중의 의견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정책에 연계하여 그동안의 관행과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였다. 

시민들은 자신들의 의견이 반영돼 있다고 강력한 믿음을 가졌으며 시장의 정책에 대한 깊은 신뢰와 이해를 통하여 각종 정책에 적극 지원했다. 누구의 이해관계가 아닌 가장 강력한 공론의 과정을 통하여 최선을 선택을 한 것이다.

위의 세 가지 예는 모두 숙의민주주의의 전형을 보여주며 동시에 정책입안자가 어떤 과정을 통하여 시민의 동참을 이뤄내는 지에 대한 과정과 형식을 보여 준다.

얼마 전 우리가 시도했던 원전에 대한 결정은 우리의 민주주의를 한 걸음 성장시킨 시도였으며 결과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정책결정에 대한 신뢰성을 높여 준다. 

대통령직속 4차산업특별위원회에서도 역시 해커톤이라는 집중 토론방식을 통하여 직접민주주의의 방법을 준용하고 있다. 사회적 이해가 필요한 주제에 대하여 이해 당사자가 모인다는 점에서는 유럽과 미국의 방식과는 다르지만 서로의 이해를 좁혀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숙의에 대한 과정에서 서로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사안에 대하여 이해 당사자를 모두 부르는 것은 사실 합의를 이뤄내기 어렵고 입장차이만 확인 할 수 있다. 하지만 이해가 없는 중립적 입장의 시민을 구성하여 결정을 내리게 한다면 절차와 충분한 토의를 통한 서로의 이해를 통하여 합의점을 구현해 낼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적 갈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며 이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토론과 연구에 의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시민의 이야기에 답이 있다"라는 책의 제목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다원화된 사회에서 개인의 가치가 존중되고 이를 반영하기 위한 합의체, 플레닝셀, 타운홀, 해커톤 등의 다양한 방법이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지켜 줄 것이다. 

특이한 것은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 분들이 박원순 서울시장,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최승호 MBC사장, 안진걸 참여연대 시민위원장이다. 모두가 소위 진보의 사회적 가치를 가지고 시민사회를 꿈꾸는 분들이다.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적 열의와 함께 좋은 방법을 제시한다. 

본 서는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하는 존 개스틸 교수와 터프츠대학 정치학과 교수로 있는 피터래빈 교수가 엮었으며 공인회계사로 일을 하며 환경운동연합에서 통역등의 자원봉사를 하는 장용창님과 뉴질랜드 오클란드 대학에서 환경대학원을 공부한 허광진님이 번역을 맡았다. 

주식회사 시그니처에서 2018년 5월 초판을 인쇄했다.

[기고자 소개]
이태윤
자유와 방임을 동경하고 꾸준한 독서가 아니면 지능이 떨어진다고 믿는 소시민이며 소설과 시에 난독증을 보이는 결벽주의자  
                   

키워드

#N
저작권자 © 의료기기뉴스라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