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 정원준 KISDI ICT 전략연구실 연구원

국내 인공지능(AI) 의료기기 현황 및 규제 이슈

최근 인공지능(AI)이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핵심 동인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가운데, 의료용 빅데이터를 활용한 AI 기반의 융합 비즈니스가 점차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특히, AI 의료기기는 기존 치료 중심 의료체계에서 사전적 진단 및 예방 등 개인 맞춤형 치료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촉진하고, 의료 서비스의 질적 수준을 크게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따라 본 고는 각종 암 질환 및 뇌졸중 등의 영상진단 및 의료정보 검색에 활용되고 있는 국내 AI 의료기기 시장 동향을 개괄해보고, 관련 시장 활성화에 있어 규제로 작용하는 사전적(AI 의료기기 허가·심사제도 구체화, 법적 책임 문제 논의, 의료기관의 도입 인센티브 강화 등 주요 정책적 현안 과제를 제시하도록 한다.

 

▲ 정원준
KISDI ICT
전략연구실 연구원

I . 서론

최근 4차 산업혁명의 패러다임 변화 속에서 새로운 시대를 이끄는 핵심 동인으로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인공지능은 인지, 학습, 추론, 판단 등 인간사고 과정의 전반을 알고리즘 설계로 구현하는 SW기술로서, 특정 산업에 한정하지 않고 전 산업 영역에 걸쳐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범용기술(General Technology)의 특징을 가진다. 이에 따라 본 고에서 다룰 의료 분야를 비롯해 제조, 금융, 교육, 농업, 항공 등 지식이 활용될 수 있는 광범위한 도메인(영역)에서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응용제품 및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다.

특히, 의료 분야는 ICT융합 의료기기의 증가로 인해 대규모 의료용 빅데이터의 확보가 용이해짐에 따라, 이러한 빅데이터를 활용한 AI 기반 비즈니스가 점차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딥러닝, 머신러닝, 영상인식 기술, 음성인식 기능 등 AI 기술은 의료 영상의 판독 정확성을 높이고, 환자의 임상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거나 방대한 전문의료 정보에의 접근성 향상 등에 기여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기존의 치료 중심 의료체계에서 사전적 진단 및 예방 등 개인 맞춤형 치료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촉진하고, 의료 서비스의 질적 수준을 크게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이처럼 AI 기반 의료 시장의 급격한 확대가 전망되는 가운데, 혁신적 의료기술의 발전에 합리적으로 대응하는 “의료기기 허가·심사 규정”, “AI의 법적 책임 문제” 등 규제 이슈가 제도적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그 동안 AI가 접목된 SW 제품의 의료기기 해당 여부, 성능 검증 요건 등 세부 판단기준이 불명확한 상황이었으나,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빅데이터 및 인공지능(AI) 기술이 적용된 의료기기의 허가·심사 가이드라인(‘AI 의료기기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바 있다(2017.11.23.). 이에 따라 본 고에선 국내 AI 의료기기 시장 동향을 개괄적으로 살펴보고, 시장 활성화에 있어 규제로 작용하는 사전적(허가·심사제)·사후적 규제(민·형사상 법적 책임) 쟁점을 분석하도록 한다.

II . AI 의료기기 개념 및 국내 동향

1. AI 의료기기 개념 및 특징

AI 기반의 의료 서비스는 분석 대상이 되는 데이터 유형에 따라 3가지 정도의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① 전자의무기록이나 차트에 저장된 환자 진료기록, 유전체 데이터 등의 복잡한 의료 데이터를 분석하는 인공지능, ② X-Ray, CT, MRI 등 의료영상을 판독하는 인공지능, ③ 환자의 임상 데이터 등 연속적 의료 데이터를 모니터링해 질병을 예측하는 인공지능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한편, “빅데이터·AI가 적용된 의료기기(‘AI 의료기기’)”는 의료용 빅데이터를 분석해 질병을 진단·예측하는 독립형 소프트웨어 형태의 의료기기를 의미한다. AI 의료기기는 머신러닝(기계학습) 방식을 기반으로 의료용 빅데이터를 분석해 특정 패턴을 인식하고 질병을 진단·예측함으로써 맞춤형 치료법을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임상의사결정지원(CDSS), 의료영상진단보조(CAD) 등의 SW가 대표적이며, IBM사의 ‘Watson for oncology’처럼 단순히 학술정보, 의학자료 등 텍스트 의료 데이터를 검색·추천하는 제품은 의료기기 대상에서 제외된다.

2. 국내 AI 의료기기 시장 동향

국내 빅데이터·AI의료기기 시장은 2020년 2조 2,000억 원에서 2030년 27조 5,000억 원으로 큰 폭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내 시장은 심장질환, 폐 질환, 유방암 등 각종 암 질환 및 뇌졸중까지 이미 다양한 의료 분야에서 인공지능과의 접목이 진행되고 있으며, 특히 영상진단 분야에 집중돼 있는 상황이다. 이하에선 AI의료기기 해당 여부가 문제되는 IBM사의 ‘Watson for Oncology’ 시스템과 영상진단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내 주요 업체들의 개발 동향을 살펴보도록 한다.

가. IBM Watson for Oncology

IBM사의 ‘Watson for Oncology’는 Watson 컴퓨터의 인지시스템(cognitive system)을 통해 환자 데이터와 의학전문자료 등 광범위한 임상 데이터를 분석해 환자 및 의사에게 적합한 치료 옵션과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이다. 특히, 세계적인 암센터인 미국 ‘MSK (Memorial Sloane Kettering)’과 협력해 종양학 논문 4만 건, 300개 이상의 의학저널, 200여 종의 의학교과서, 1,500만 페이지가 넘는 의학전문자료 등 방대한 규모의 학습 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발표되는 최신 연구들을 의료진이 신속히 파악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치료 시점에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치료법과 전문지식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Watson for Oncology’는 환자 데이터를 입력하면 적절한 치료법을 ‘추천’, ‘고려’, ‘비추천’으로 나누어 제시하며([그림 2] 참조), 이에 대한 의료진의 판단 결과(peer review 방식)를 딥러닝 기술로 학습해 알고리즘의 정확도를 점차 증진시키는 원리이다.

국내에선 2016년 11월 가천대 길병원이 처음으로 암 환자 진료에 개시한 이후, 부산대 병원(2017.1.), 건양대 병원(2017.3.), 계명대 동산의료원(2017.4.), 대구 카톨릭대 병원(2017.4.)에서 도입·운영 중이고, 서울 중앙보훈병원(2017.4.)과 조선대병원(2017.7.)도 추후 도입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나. 삼성메디슨

삼성메디슨은 2014년 초음파 기기인 ‘RS80A’의 허가를 받았고, 해당 기기에 딥러닝을 활용해 유방 병변의 특성과 악성 여부를 제시하는 “S-Ditect 모듈”을 추가해 의료기기 허가를 갱신했다(2017.3.). ‘S-Ditect’는 1만 개에 달하는 유방 조직 관련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병변 경계 지정, 선택 부위 조직 특성 추출, 악성 여부 판정 단계 등 진단과정 전반에 딥러닝 기술을 적용해 정확도를 크게 향상시키고 있다. 해당 모듈은 병상에 누운 환자의 유방을 스캔해 실시간으로 영상을 확인하고, 빅데이터 통해 제시하는 후보 데이터 중에 의료진이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결과를 채택해 정밀 진단을 수행하는 방식이다.

나. 뷰노

국내 AI 의료기기 스타트업으로 손꼽히는 뷰노는 자체 개발한 딥러닝 엔진 ‘VunoNet’과 이를 통해 각 질병 부문별 의료 데이터를 분석하는 플랫폼인 ‘VunoMed’를 개발했다. 또한, 뷰노는 딥러닝 기반의 골 연령 및 폐질환 진단보조 프로그램인 ‘본에이지’를 내놓았으며, 본 판독 SW는 X-ray, MRI 등 영상 빅데이터를 활용해 환자와 비슷한 연령대 환자의 촬영 이미지를 의사에게 제시한다. 의사는 이를 참고해 성장판이 닫혔는지, 성조숙증, 폐질환 등을 진단하는데 참고할 수 있다. 현재 뷰노는 해당 SW의 출시를 위해 준비 중이며,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확증임상시험을 승인 받아 고려대 안암병원과 임상검증에 착수했다(2017.10.).

다. 루닛

루닛은 시장조사기관인 CB Insights가 꼽은 100대 AI 기업에 선정됐고, 세계 이미지 인식 대회 ‘TUPAC 2016’에서 MS, IBM을 제치고 3개 미션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는 등 선도적인 기술을 가진 의료 영상 진단 분야의 스타트업이다. 또한, 루닛은 딥러닝 기반의 AI와 흉부 X-ray 이미지인식 기술을 접목한 ‘의료영상진단 SW’의 확증 임상시험 승인을 받았다(2017.10). 본 제품은 폐암, 폐렴, 결핵, 기흉 등 4대 폐질환을 감별하는 용도로 개발했으며, 딥러닝을 통해 정확도를 높였다. 실제로 루닛은 결핵의 경우 영상 판독 정확도는 90% 정도이고, 좀 더 복잡하고 판독이 어려운 유방암의 경우 81% 정도의 정확성을 보이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최근에는 웹사이트를 통해 일반인들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실시간 의료 영상 분석을 위한 클라우드 기반 인공 지능 솔루션인 ‘루닛 인사이트’를 발표하기도 했다(2017.11.).

라. JLK Inspection

JLK Inspection 은 딥러닝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국인 뇌경색 환자 MRI 빅데이터를 3차원화 해 분석하는 ‘JBS-01K’를 개발했다. 본 뇌졸증 진단시스템은 뇌경색, 뇌출혈의 진단 및 유형 분류를 보조하는 역할을 하며, 진단에 있어 정량적 판단 기준을 제시해 뇌질환 환자의 맞춤형 진단과 적절한 치료 전략 수립을 보조하는 프로그램이다. 뇌 분야는 직접 관찰이 어렵기 때문에 영상판독에 대한 의존성과 중요성이 매우 큰 분야로서 영상진단 프로그램을 통해 육안으로 놓칠 수 있는 부분을 판독하고, 뇌질환 진단 및 원인 규명이 어려운 치매 치료 등에 활용될 수 있다. ‘JBS-01K’는 3등급(의료영상보조장치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로서 국내 최초로 임상시험 승인을 획득했고(2017.9.), 임상 승인을 토대로 제품 상용화 추진에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AI의료기기 가이드라인에 따라 후향적 임상시험 방법으로 현재 분당 서울대병원과 동국대 일산병원에서 임상시험에 착수했다.

III . AI 의료기기 관련 제기되는 규제 이슈

여기에서 AI 의료기기 규제 이슈는 사전적 진입규제로서 기존 의료기기의 허가·심사 등을 유연하게 적용하기 위한 행정절차 마련 문제와 사후적 규제로서 인공지능의 자율성으로 인해 인적·물적 손해발생 시 알고리즘 책임성 이슈로 구분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

1. 허가·심사 제도

가. “AI 의료기기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의 주요 내용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환자의 진료기록, 의료영상, 생체정보, 유전정보 등의 의료용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이 적용된 SW의 의료기기 판단 기준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AI 의료기기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2017.11.). 가이드라인 제정을 통해 의료기기에 해당하는 AI 기반의SW를 규율하는 허가·심사 기준을 마련한 것이다. 동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AI 의료기기의 판단기준은 의료기기법 제2조의 정의 규정을 충족하고, ① 소프트웨어가 의도한 대로 작동하지 않아 환자에게 위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와 ② 소프트웨어가 의료인의 임상적 판단을 보장하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비의료기기에 해당하는 SW의 예시로는 △의료기관에서 보험청구 자료 수집·처리 등 행정사무를 지원하는 제품 △운동·레저 및 일상생활에서 건강관리용 제품 △대학·연구소 등에서 교육·연구 목적으로 쓰는 제품 △의료인이 논문·가이드라인·처방목록 등 의학정보에서 환자에게 필요한 치료법 등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제품 등 총 5가지 유형을 제시하고 있다.

이 밖에도 가이드라인은 ① 허가심사 신청서의 성능 기재 방법, ② 성능 및 유효성 검증 항목, ③ 임상적 유효성 확인, ④ 제출자료의 범위, ⑤ 변경 허가·인증 대상, ⑥ 버전 관리, ⑦ 학습데이터의 관리, ⑧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 적용에 따른 허가 범위를 규정하고 있다.

먼저 유효성 검증항목으로서 민감도, 특이도, 양성 예측도, 음성 예측도, AUC 등 5개 항목에 대해 검증을 실시해야 한다. 여기서 AUC(Area Under the Curve)는 ROC(Receiver Operating Characteristic) Curve의 아래 면적으로 진단 정확도를 의미한다.

또한, 의료 빅데이터를 활용한 후향적 연구(Retrospective study)를 인정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후향적 연구는 연구대상자와 직접적으로 접촉하지 않으면서 이루어지는 연구로 피험자의 의무기록을 조사해 특정 데이터를 수집·통계 처리해 결과를 산출하는 연구를 의미한다. 후향적 연구를 통해 의료기관 내 전자의무기록, 의료영상, 생체신호, 병리검사 등의 데이터, 임상시험 결과 등을 사용할 수 있다. 전자의무기록관리 및 보존을 의료기관 내부에서만 해야 하는 것으로 규정하는 의료법 시행규칙 제16조를 개정(2016.8. 시행)함에 따라 의료기기 성능에 영향이 없는 경우 클라우드와 연동된 의료기기를 허가 받을 수 있게 됐다. 여기서 클라우드 서버는 의료기기 관리 대상은 아니지만, 서비스 형태, 서버운영 환경 등은 반드시 허가 심사신청서에 기재해야 한다. 다만 제품설계의 변경 없이 단순 학습데이터의 수정 및 추가 수집으로 인한 확장의 경우, 허가 시 제시된 정확도 범위를 준수하면 변경허가가 없이도 자율적 관리가 가능하다.

나. 가이드라인의 해석상 문제점 및 개선 방향

AI 의료기기 가이드라인의 발표와 함께 제기된 쟁점 중 하나는 ‘IBM Watson for oncology’를 의료기기로 인정할 수 있을지의 문제이다. 본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의학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IBM Watson for Oncology’는 “의료인에게 환자의 건강정보 또는 진료정보를 정리 및 추적하는 툴을 제공하거나 의학정보에 쉽게 접근하도록 도움을 주는 소프트웨어”에 해당해 ‘비(非)의료기기’로 분류된다. 다만 해당 서비스가 단순히 기존 치료법을 추천하는 수준을 넘어 완전히 새로운 치료법을 제안하는 형태로 진화한다면, 환자의 안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추후 의료기기 해당 여부 논란이 재개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본 가이드라인의 본문 내용을 검토해보면, 명확성 측면에서 구체적이지 못한 부분들이 드러난다. 일례로 질병진단법, 치료법, 의약품 정보 등 빅데이터 분석에 기반하는 정보검색 SW는 의료기기 허가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으나, 허가 대상인 의료영상분석장치 소프트웨어 2등급(분석) 의료기기와의 구별 기준이 해석상 모호한 측면이 있다.

‘버전 관리’를 규정하면선 “작용원리 변경, 사용목적 변경, 성능 변경(학습데이터 변경에 의한 성능 변경은 허가 시 기재된 성능(정확도)의 범위를 벗어날 경우만 해당)”을 변경허가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학습 데이터를 변경하는 대부분의 경우 정확도 변경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고 정확도 범위를 정량적으로 특정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변경허가 범위가 지나치게 확장될 우려가 있다.

또한, 단순히 GUI 디자인을 변경 하는 경우에도 변경허가나 즉시 연차보고를 요구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구체적 사례나 구분 기준을 좀 더 명확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표 1] 참조). 이 밖에 “의료기기 성능에 영향을 미치는 클라우드 서버의 운영 환경에 대한 변경이 발생할 경우”에도 변경허가를 요구하고 있으며, “의료기기 성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라는 구문이 다소 포괄적으로 기술(記述)돼 있어 요건을 좀 더 상세히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2. AI 의료기기의 민형사상 책임 문제

AI 의료기기에서 ‘인공지능’은 인간의 사고 과정과 유사한 자율적 판단을 수행하는 주체이지만,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법적 책임주체는 될 수 없다. 이로 인해 AI 의료기기를 활용해 진료하는 과정에서 좋지 않은 결과 즉, 사람의 생명, 신체 및 재산권에 침해가 발생하는 경우 SW 개발자, 의료기기 제조업자, 의사, 병원, 환자 등 어느 주체가 책임을 질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AI의료기기가 적용될 수 있는 관련 법령으로「지능형 로봇개발 및 보급촉진법」이 있지만, 동 법은 산업 진흥 차원에서 개발 및 보급에 초점을 둔 법률이기 때문에 이러한 쟁점을 규정하고 있지 않다. 또한, 아직까지 국내에선 인공지능 또는 로봇 공학의 이용에 따른 법적 책임 귀속 문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지 못하고 있다.

현행법은 ‘사람’을 행위주체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인공지능의 행위능력을 직접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에 따라 인공지능의 판매·제작하거나 사용 과정에 관여한 당사자가 안전한 설계의무, 윤리적 원칙의 알고리즘화, 관리의무 등을 위배한 것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인공지능의 법적 책임에 관한 쟁점은 종국적으로 AI의 자율성과 인간의 통제권을 어떻게 조화해야 하는지의 문제로 귀결된다. 물론 현재는 AI 의료기기가 의사의 진단과정에서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지만, 향후 AI의 독자적인 진단이 가능하게 되면 이러한 논쟁은 현실적 문제로 대두될 것이므로 사전적 논의를 활발히 진행할 필요가 있다.

가. 민사상 책임 문제

통상 제조사로부터 물건을 구입해 사용하던 중에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해 이용자에게 생명, 신체, 재산상의 손해가 발생하는 경우 민법상 불법행위 책임(제750조)의 특별법으로서 『제조물책임법』이 적용된다. 제조물책임법에 따르면, 이용자는 민법상 손해배상청구 시 요구되는 고의·과실 및 결과발생의 인과관계에 대한 입증 부담에서 해소돼 결함(제조상 결함·설계상 결함·표시상 결함)만을 입증하면 손해배상청구가 인용된다.

그런데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는 AI는 유체물인 SW 형태로 구현되며, 이를 무체물을 대상으로 하는 제조물법상 ‘제조물’과 민법상 ‘동산’의 개념에 포섭시킬 수 있는지 여부이다. 국내외 입법례 및 판례 등에서 다양한 찬반의견이 혼재돼 있으며, 필자의 견해로는 SW를 현행 민법상 ‘동산’이나 제조물책임법상 ‘제조물’로 보는 것은 확대 해석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따라서 제조물책임법상 제조물 개념을 수정하거나 신규 법령을 신설하는 등 입법적 개선을 통해 인공지능 SW를 규율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AI는 SW 알고리즘으로서 서비스 형태로 운용되기도 하지만, 로봇, 전자기기, 의료기기 등의 제조물에 내재(embedded)돼 작동하기도 하므로 이러한 다양한 형태의 비즈니스 모델을 포괄할 수 있는 해석 준칙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AI 의료기기 허가를 받은 딥러닝 기반의 초음파 기기(제품에 내재된 SW)와 의학 전문정보 검색 알고리즘(SW 프로그램)의 손해배상책임 산정 범위를 달리 할 것인지 등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나. 형사상 책임 문제

다음으로 AI의 형법상 책임 귀속과 관련한 법적 문제가 제기된다. 인공지능의 형사처벌을 위해 “법인에 대한 양벌규정(兩罰規定)”과 같은 형태로 부분적인 형벌능력을 고려해 볼 수 있으나, 이는 법인이 소유한 재산에 대한 제재를 가하는 취지의 규정으로서 재산을 소유할 수 없는 AI에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

최근 2017년2월 EU의회는 AI를 가진 로봇의 법적 지위를 ‘전자인간(Electronic Person)’으로 인정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킨 바 있지만, 해당 결의안에서 ‘로봇세’와 ‘기본소득 납세의무’에 관한 부분은 혁신을 제약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배제된 바, 완전한 권리 및 의무주체로서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볼 수는 없다. 향후 국내서 AI의 책임능력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위해선 법리적 관점에서 관련 근거 마련을 위한 이론적 연구가 더욱 심도 있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AI의 형사상 주체성은 인정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불법적 행위를 야기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법리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된다. 즉, AI의 설계자, 생산자, 판매자, 관리자, 이용자 등 배후의 주체에게 형사상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다. AI 배후의 책임자가 고의로 불법적 결과를 야기했다면, 형법상 간접정범론 이론을 차용하거나 불법행위자가 AI를 수단으로 사용한 것으로 책임을 부여할 수 있다. 또한, 이용자가 판매 당시의 SW 알고리즘을 악의적 의도(고의)로 개조하거나 변형해 이를 불법적 도구로 사용했다면, 결과발생에 대한 책임은 이용자에게 귀속된다.

문제는 관리의무자의 과실로 인해 AI 시스템의 오작동 및 오류 등을 야기해 피해가 발생한 경우 즉, 과실책임의 경우이다. 예를 들어, AI 의료기기가 단순 오작동으로 인해 불법적 의학정보 및 처방을 제시했다면, 설계자, 제조사, 판매자, 이용자(AI 판단의 불법성을 검토하지 못한 행위에 대한 과실책임) 등의 주체에게 형사적 책임을 지우는 것이 합당한지, 그렇다면 책임 배분을 어떻게 할 것인지, 입증책임을 전환할 것인지 등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에 대한 판단 시 통상 알고리즘의 윤리적 설계를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여부, 좀 더 구체적으로는 안전성 검사 인증 여부, 제조사의 자체 윤리위원회 설치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를 테면, 엄격한 성능 및 임상적 유효성 검증이 이루어진 AI 의료기기는 안전성 확인을 위한 노력과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볼 수 있어, 비의료기기인 경우보다는 제조·판매사 측의 책임이 경감될 여지가 있어 보인다. 다만 여기서 형사상 책임에 대한 입증책임 전환, 세부적인 책임 배분 등의 구체적인 쟁점들은 학계에서의 충분한 논의 및 검토가 수반돼야 할 것이다.

IV . 정책적 제언

국내 일부 대학병원은 이미 빅데이터와 AI를 활용한 의료 서비스를 적극 도입하고 있고, SW기반의 스타트업들도 AI 의료기기 제품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본 고에서 검토한 AI 의료기기의 규제 이슈는 먼 미래의 과제가 아닌 현재에 당면한 문제로 볼 수 있다. 여기에선 앞서 검토한 AI 의료기기의 현황 및 규제 이슈를 토대로 주요한 정책적 현안 과제를 제시하도록 한다. 특히, AI 의료기기의 도입 활성화를 위해 산업적 관점에서 의료 빅데이터의 활용성 제고, 허가·심사제도 구체화, 법적 책임 문제 논의, 의료기관의 도입 인센티브 강화 등의 필요성을 제안한다.

첫째, 의료 데이터의 활용성 제고를 위해 국내 의료 데이터를 표준화해 AI 학습 단계에서 공통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잘 labeling된 양질의 데이터를 확보·연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방대한 의료 데이터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은 표준화된 의사소통 시스템인 ‘IHC(Intermountain Health Care)’를 개발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전국민 단일보험 체계로 인해 대규모 건강보험 데이터를 구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활용성 제고 차원에서 제도적 여건의 개선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우선 엄격한 의료 개인정보 규제를 완화하고 각 병원에서 개인정보 동의 현황과 객관적인 리뷰 등을 투명하게 공개해 데이터의 개방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의사마다 각각 다른 진료 기록방법 등을 단일화 하기 위해 의료 데이터 정보화 추진 시 필요한 표준 가이드라인 등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둘째, 하드웨어 중심으로 이루어진 현행 의료기기법으로 인해 최근 유입되고 있는 SW적 성향이 강한 빅데이터 및 AI 의료기기를 수렴할 수 있도록 기존 허가·심사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 물론, 식약처가 발표한 AI의료기기 가이드라인은 빅데이터 및 AI 의료기기의 허가·심사 기준을 제시하고 있고 있지만, 구체성 측면에서 실제 도입·활용 및 진료 과정의 상황을 포괄할 수 있도록 보완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의료기기 허가”가 아닌 “의료기술평가” 차원의 접근에서도 인공지능을 활용한 의료행위의 유효성이 신속하게 인정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새로운 의료행위 시술을 위한 ‘신의료기술평가’ 제도에서 신속평가대상 확대(현재 체외진단, 유전자검사 등 특정분야에만 한정), 별도의 신기술 가치평가 제도 마련 등 보상체계를 개선해 AI 의료기기 등의 신의료기술 도입이 더욱 활성화되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셋째, 대형 병원뿐만 아니라 중소형 병원 및 영상 전문의가 없는 의료기관에서도 AI 의료기기를 적극 도입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우선 병원 입장에서 단순히 마케팅적 요소가 아닌 의학적 효용 및 비용 효과성 측면에서 도입의 필요성을 느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신의료기술 평가를 통과하지 못한 의료기기의 시술은 마케팅 차원에서 사용은 가능하겠지만 비용 전가가 어렵기 때문에, 도입에 대한 유인이 크다고 볼 수 없다. 일각에선 AI를 활용한 의료영상 분석에 대한 수가(酬價) 책정을 통해 의료 현장에서의 활용성 제고를 도모하는 방안도 언급되고 있지만, 의료 수가 책정 문제는 국민 건강보험료와 직결되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AI 의료기기의 정확도가 획기적으로 향상돼 진료 행위의 수준을 크게 높이게 되면, 자산 규모가 작은 영세한 병원에서도 고가의 AI 의료기기 장비를 도입할 수 있도록 정부 보조금 및 보험재정의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이 우선 고려돼야 할 것이다.

끝으로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책임성에 관한 문제로서 AI 활용한 의료행위의 안정성이 어느 정도 확보된다고 하더라도 만일에 발생할 수 있는 피해 보상에 대한 관련 법 정비가 필요할 것이다. AI의 의료적 활용 시 인간 의사와 AI 간의 판단 불일치, 오진 및 오작동 등이 발생한다면 법적 책임 공방을 피할 수 없는 만큼 이에 관한 구체적인 법제화 논의가 필요하다. 특히, AI의 민형사상 법적 책임의 문제는 앞서 검토한 바와 같이 현행법상 적용하기에는 해석상 한계가 존재하므로, 각계 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입법화 작업 단계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1]최윤섭, “인공지능은 의료를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 (2) IBM Watson의 이상과 현실적 과제”, 2017. 6. 13.
[2]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빅데이터 및 인공지능(AI) 기술이 적용된 의료기기의 허가·심사 가이드라인”, 2017. 11.
[3]KT 경제경영연구소, “인공지능 완생이 되다”, Issue & Trend, 2016. 3.
[4]데일리메디, “삼성메디슨 섣부른 인공지능 마케팅 ‘눈살’”, 2017. 1. 11.
[5]중앙시사매거진, “기술력에서 구글을 제친 스타트업, 백승욱 루닛 대표”, 2016. 9. 23.
[6]데일리메디, “국내 첫 인공지능(AI) ‘뇌(腦) 영상진단’ 임상시험 허가”, 2017.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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