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에 바란다 : 의료기기산업 발전(1), 송영주 한국J&J메디칼 대외협력 및 정책담당 부사장

■ 정부에 바란다 : 의료기기산업 발전(1)

"진정한 의료기기산업 되려면 담대한 정부 정책 필요”

산업 인재 역량 키우고 경험 축적 가능한 국내외 기업 간 협력 많아져야

▲ 송영주
한국J&J메디칼
대외협력 및
정책담당 부사장

지난 연말 정부의 의료기기 산업 종합발전 계획이 발표되면서, 문재인 정부가 2022년까지 추진하게 될 의료기기 산업 정책의 5개년 로드맵이 드디어 공개됐다. 의료기기산업계의 숙원이었던 ‘의료기기산업 육성 법안’의 통과가 2017년에도 유보돼, 법적 근거 없이 마련된 탓인지 실행 과제들이 기대만큼 다양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 의료기기 발전 계획은 보건복지부가 ‘의료기기산업발전기획단’을 구성해 1년여에 걸쳐 국내 산업 현황을 진단하고 마련한 범부처 성격의 솔루션이라는 점에서 이번 로드맵을 높이 평가한다. 더구나 전임 정부에서 내세웠던 ‘2020년까지 세계 의료기기 7대 강국 진입’이라는 구호성 목표를 과감히 벗어던진 점은 주목할 만하다.

‘글로벌 순위’라는 외형적 목표에서 벗어나, 이번 정부는 수출액이나 일자리 같은 보다 작은 목표를 비전으로 내세웠다. 작지만, 이런 구체적인 비전이 5년에 걸쳐 100% 실현되기를 기대하면서, 정부의 세부 전략에 대해 개인적 의견을 몇 가지 첨언한다.

국내 의료기기 기업의 글로벌 역량 강화 : 글로벌 기업을 멘토로 활용하라

과거 한 토론회에서 정부 출연기관 관계자가 국내 의료기관에서의 국산 의료기기가 외면받는 현실을 타개하려면, “국산 의료기기 사용 쿼터제가 실시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들으며 내심 당혹했던 적이 있다.

보건복지부가 이 주장을 정책으로 실현시키지는 않았지만 글로벌 기업을 국내 기업의 성장을 막는 걸림돌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일부 시각에 평소 “국내 의료기기 기업의 역량 강화를 위해선 글로벌 기업을 활용해야 한다”는 지론을 펴왔던 필자로선 상대적으로 안타까운 심정일 수밖에 없었다.

제약이나 의료기기 개발은 경험의 오랜 축적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성공의 경험이 일천한 국내 의료기기 기업이 사업화까지의 단계에 도달하려면 글로벌 기업과의 협력이 필수불가결하게 요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적으론 의료기기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정부의 우선 과제는 국내 기업만을 위한 제한적인 국내 의료기기 시장 구축이 아니라, 영세기업의 역량 강화가 목표가 돼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현재 개발 중이거나 이미 출시한 국산 제품의 성능 개선을 지원하는 업무가 돼야 할 것이다. 우선순위가 명확하게 설정되면 정부가 국내 기업을 위해 해야 할 지원 업무 범위도 명확해질 것이다.

예를 들면, 정부는 벤처기업이 단계 별로 적절한 멘토링을 얻을 수 있도록 산·학·연의 다양한 멘토를 연계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다양한 사업화 경험을 축적한 글로벌 기업이 멘토로서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다양한 인센티브 정책 도입 등 에코시스템 구축도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의료기기산업 인재, 어떻게 발굴할까 : 우리나라 최고의 의대 인재 풀을 끌어들이자

이번 의료기기산업 종합발전 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인력의 전문성 배양을 위해 현재의 의료기기산업 특성화 대학원을 의료기기 분야 석·박사 학위과정인 전문대학원으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이외에도 2020년까지 약 5만 명의 산업계 인력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각종 인력양성 프로그램도 구상 중인 것으로 보여진다.

개인적으로 강조하고 싶은 점은 의료기기산업 발전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인재를 배출하려면 전문대학원으로의 시스템 구축뿐만 아니라, 커리큘럼도 글로벌 트렌드를 반영한 실용 교육 프로그램이어야 한다.

또한, 국내 의료기기산업이 진정으로 차세대 성장엔진으로 우뚝 서려면 우리나라 최고의 인력이 포진해 있는 의대의 인재풀을 반드시 의료기기산업에 끌어들여야 할 것이다. 바이오테크놀로지의 고급인력들이 벤처기업에 뛰어드는 것을 망설이지 않도록 탄탄한 창업 지원 자본 조달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 벤처캐피털 투자가 급증하고 있는 제약기업처럼, 의료기기 벤처기업에도 투자자의 관심이 생겨난다면 더 많은 인재들이 의료기기산업에 용감하게 뛰어들 것이다.

전주기 R&D 지원 인프라 구축보다 시급한 건, 선택과 집중의 투자환경

2015년 정부의 바이오헬스 미래신산업육성전략(의료기기)에 이어 이번에 발표된 의료기기종합발전계획에서도 정부는 ‘의료기기 개발을 위한 전주기 지원’을 대표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정부가 중소 의료기기 기업의 시장 진입을 위해 시제품, 전임상, 임상, 사용 적합성 등 의료기기 개발 전주기에 걸쳐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목표이다.

이런 과제 설정에 대해, 개인적으로 드는 의문은 전주기의 인프라 구축을 통해 국내 중소기업들이 내놓을 혁신 제품이 과연 몇 개나 될 것이냐는 점이다. 글로벌 경쟁력이 취약한 실정에서 전주기에 고른 R&D 투자 배분을 하는 것보다는 우리의 현재 경쟁력을 점검하고, 강점 분야를 선택해 집중 지원하는 것이 스마트한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생체현상 계측이나 의료 정보, 기기 관리 등 선진국과의 기술격차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분야에 우선 정부의 투자 역량을 집중하고, 기술 격차가 큰 분야에선 균등한 R&D 투자 대신 별도의 지원 인프라 전략을 설정하는 것이다.

우대 혜택뿐만 아니라 박탈 조항도 포함된 객관적 인증 제도 도입해야

일단, 올해 안으로 의료기기산업 육성법이 제정되면, 보건복지부는 혁신형 의료기기 기업 인증 제도 등 각종 법적 제도 보완을 서두를 것이다.

혁신형 의료기기 기업 인증 제도는, 각종 인센티브 정책은 확실하게 부여하되 인증 기준 위반 시엔 객관적인 벌칙 조항도 뒤따르는 혁신형 제약기업인 증제도보다는 진일보한 규정이 마련되길 기대한다.

미국 매사추세츠 정부의 생명과학 인증기업(Certified Life Science) 제도를 예로 들어보자. 해당 기업은 신청서 제출 시 고용 창출 등 각종 목표를 제시해야 하나, 일단 수혜기업으로 선정되면 기업은 사업화 단계까지 버틸 수 있는 각종 세금 우대 혜택을 받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수혜자격의 박탈 조항에 혜택 취소는 물론 회수에 대한 언급까지 있다는 점이다. 인증 기업은 매사추세츠 정부 산하 준공공기관인 매사추세츠 생명과학센터의 연례 보고서를 통해 고용률, 수익창출, 민간 자본유치 등등 업무 전반에 대해 보고해야 한다. 만일 목표에 미달했을 경우 인증 취소와 함께 이제까지의 혜택도 회수당하게 된다. 또한, 일자리 창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거나 유지하지 못했을 경우, 국세청이 혜택을 회수 혹은 환수한다고 명시돼 있다.

우리나라의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 제도의 경우, 인증 자격 박탈은 있으나 각종 혜택에 대한 회수 조항은 아직 없다. 2018년엔 업계의 절실한 희망이 국회에 꼭 전달돼 의료기기산업육성법이 하루빨리 통과되길 기대한다.

혁신에 가치를 부여하라 : 첨단, 혁신기술 친화적 급여정책 도입

마지막으로, 이번 의료기기산업 종합발전 계획에서 고무적인 내용은 첨단 기술을 활용한 의료기기에 대한 합리적 건강보험 급여 수가 마련을 추진과제로 포함시켰다는 점이다. 의료로봇 등 치료 효과는 기대되나 아직까지는 보험수가는 반영되지 않아 시장 진입이 지연되는 첨단 의료기기 제품에 대해 기술 친화적 급여정책 도입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 건강보험 재정 여건 하에서 단시일 내 혁신 의료기기에 대한 가치인정 방안이 마련은 쉽지 않겠으나 신의료기술의 시장화 촉진이라는 정부의 확고한 의지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첨단 의료기기를 개발 중인 국내 기업들에는 분명 활력제가 될 것이다.

결론

의료기기산업의 잠재력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필자가 즐겨 인용하는 보건산업 수치는 수출 실적이다. 의료기기산업의 국내 시장규모는 제약이나 화장품 산업에 비해, 1/5의 작은 규모이나, 의료기기산업의 수출액(29억 달러, 2016년)은 제약(31억 달러)과 엇비슷했다. 사실 2014년까지만 해도 의료기기 수출액은 제약이나 화장품보다 더 많았다.

문제는 중소업체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업계 특성상 의견 표출의 목소리가 너무 작아 보건의료산업에 기여하는 만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 안타까운 상황은 의료기기 업계 종사자들도 자신들의 역량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연히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제약업계 육성을 위해선 2차년도 5개년 종합 계획이 수립되는 시점에 의료기기업의 육성 지원법은 몇 년째 국회 통과조차 못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의료기기산업에도 제약과 유사한 정부의 R&D 지원 정책이 쏟아진다면, 전문 인력양성과 유치를 위한 정책이 이어진다면, 정부의 재원 조달 계획이 마련된다면, 의료기기산업은 우리가 상상치 못했던 스케일업된 성과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우리 미래를 점프시킬 동력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에서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인공지능, 나노기술, 빅데이터, 로봇기술을 접목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의료기기 산업이다. 이 산업의 인재가 더 다양하고 깊이 있는 역량을 축적할 수 있도록 국내 회사와 글로벌 회사들이 더 많은 파일럿 프로젝트를 시도하길 기대해본다. 정부는 과감한 인센티브 정책을 도입해 협력 사례를 더욱 증가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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