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의료기 안병산 회장-삼목회·의료용구수입자협의회 통해 협회 설립에 기여

㈜동방의료기(회장 안병산)는 순환기내과, 호흡기내과, 진단검사의학과, 성형외과, 안과 신경외과 등 다양한 분야의 의료장비 및 용품, 시약 등을 공급하는 회사다. 1979년에 창립한 동방의료기는 34년째 국민 건강을 위해 양질의 의료기기를 공급하고 정성어린 사후관리로 정평이 나있다. 창립자인 안병산 회장은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태동에 기여한 삼목회에서 수입용구수입자협의회에 이르기까지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며 의료기기산업의 권익신장에 큰 족적을 남겼다. <편집자 주>

안병산 회장
     ㈜동방의료기

우수한 제품을 정직하게 납품하고 철저한 A/S를 경영이념으로 한다는 ㈜동방의료기 안병산 회장은 1968년 ㈜신한과학에서 의료기기 수입을 담당하며, 업계에 첫발을 내딛었다.

신한과학 의료기기 책임자로 입사한 안병산 회장은 AID 차관을 이용해 대규모 사립 대학병원 설립이 시작되던 시점으로 삼성고려병원, 한강성심병원, 경희대학병원, 한양대학병원, 조선대학병원 등 대규모 병원건립에 여러 가지 외산 장비를 공급했다. 종합병원이기 때문에 외과, 내과, 산부인과, 신경외과, 물리치료실, 수술실, 응급실 등 각과마다 전문의료기기 수요가 늘어나던 시기였다.

이후 1975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당시 세계 탑의 의료기기 공급업체 AHS에 입사, 한국지사 설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영업부장으로 근무했다. 1년 후 미국의 TKB 인터내셔날에서 한국 주재원으로 일하면서 의료기기 산업분야에서 국제적인 감각과 역량, 외국계 기업의 선진적인 경영마인드를 키웠다.

의료기기와 인연을 맺은지 11년만인 1979년 동방의료기를 설립한 안병산 회장은 당시 일본이나 홍콩의 대리점을 통해서만 수입할 수 있었던 미국 의료기기 제품을 직수입함으로써 당시 열악했던 의료기기산업에 작은 바람을 일으켰다.

국내 의료기기 산업 현장을 개척하겠다는 의지로 세운 동방의료기는 창업 이래 연평균 15%이상의 꾸준한 성장을 거듭하며 의료기기공급에 있어 경쟁력을 자랑하고 있다.

처음처럼 지금도 매달 외국으로 출장을 직접 다니며 최신 진단 및 치료기술의 정보와 신제품 등의 현황 파악을 위해서 회사를 비우는 때가 많지만 안병산 회장은 여기서도 직원들에 대한 신뢰가 깊다.

안병산 회장이나 계열사 임원들이 부재중이라도 긴급한 사안에 대해 '선조치 후보고'라는 시스템을 도입, 부서장급 직원들에게 전결권을 줬기 때문이다. 업무의 신속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업무 시스템은 ㈜동방의료기 부서장들에게 자연스런 경영이 수업되면서 이후에 직원들의 독립에도 보탬이 되고 있다.

직원들에게 애정이 각별한 안병산 회장은 지금은 당연한 용어인 인센티브제도를 업계에서 누구보다 먼저 도입했다. 5년여간 외국 회사에서 일한 경험을 접목, 직원들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고 장기근속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안병산 회장은 "정상적인 경영이 가능한 정도로 회사가 유지된다면 당연히 회사이익을

 

나눔에 있어 직원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직원들의 열정을 키우는 안병산 회장의 신념 깃든 경영방식은 회사의 규모를 키우는 에너지가 됐다.

혁신적인 경영과 열정으로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효율적인 회사 경영을 위해 2000년에는 순환기 내과, 호흡기 내과 마취과, 흉부외과, 안과, 이비인 후과 영역을 담당하는 ㈜동방헬스다인을 분사 시켰고, 2006년도에는 혈액가스, 전해질분석기 등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동방피오씨, 2007년에는 인공유방 보형물을 전문적으로 공급하는 ㈜동방에스메딕을 출범시켜 국내 시장의 상당부분을 맡고 있다. 

안병산 회장은 "34년간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어온 바탕에는 고객과의 신뢰를 쌓은 덕분이며, 고객 한명 한명에게 최선을 다해 신뢰를 쌓아가는 노력이 쉼없이 이어질 때 회사가 성장한다"고 말했다.

도움을 받으면 갚을 줄 아는 사람, 안병산 회장은 어려웠던 시기를 기억하고 이웃을 돕는 사회사업과 장학사업에 앞장서고 있다. 도시학교에 비해 시설이 열악한 지방학교에 지원하며, 서울 소재 여느 초등학교 못지 않은 시설을 갖추도록 교육환경를 개선했다. 자신이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했던 공주 영명고등학교에는 장학금을 내놓는 일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의료기기산업 발전에 공헌
의료기기 사업을 하면서 생명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한 사회를 도움이 되는 일에 적극적인 안병산 회장은 의료기기산업의 권익을 위해 1994년 업체 친목모임인 '삼목회'를 결성한다. 그 후 1995년 '의료용구 수입자협의회' 설립의 산파역을 담당했으며, 협의회의 보건복지부 인가를 위해 노력하였고, 최종적으로 1999년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의 설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삼목회' 설립은 미국에서 열린 미국심장학회(AHA)에 참석했다가 참가한 골프모임이 계기가 됐다. 안병산 회장이 회고하기를 같이 라운딩한 윤대영 대화기기 회장(전 협회장) 등과 대화중에서 '업계 대표들이 모여 친선을 도모하고, 현안에 대한 중의를 모아 관에 의사를 전달하는 모임을 갖자'는 것이 삼목회의 시작이라고 전했다. 삼목회라는 회명도 매월 셋째 주 목요일 모임이라는 뜻이다.

귀국한 안병산 회장은 정관을 마련하고 회비도 30만원으로 정해 일일이 전화를 걸어 모임을 설명하고 20여명의 업계 대표들이 참여한 삼목회를 발족시켰다. 첫 삼목회 모임은 1994년 용인소재의 골드 컨트리클럽에서 가졌다. 초대회장은 반도메디칼 백대기 회장이 맡았다. 총무는 안병산 회장이 모임 제안자로서 삼목회 살림을 맡게 됐다. 현재도 삼목회는 한국의료기기산업회 회원사 대표들의 대표적인 친목 모임으로 이어가고 있다.

안병산 회장은 '의료용구수입자협의회'2대 회장으로서 미국 대사관의 초청으로 1997년 싱가폴에서 열린 미국의료기기공업협회(HIMA)의 애뉴얼 미팅에서 국내 의료기기시장 현황에 대해 발표를 한다. 당시 국내는 의료기기 법규정을 마련하는 시기였으며, 국내 시장을 조망할 수 있는 전문가로서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은 몇 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대사관 상무관이 교체 될 때 마다 전임자들은 "피터 안을 만나라"라는 말로 업무인수인계를 했을 정도다.

 

국내 의료기기업계는 1994년 전까지 의료용구수입자협의회와 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으로 이분화 되어 의료기기 수출·수입 과정에서 혼란이 많았고 규정도 미비했던 시기 였다. 한 국의료 기기산 업협회가 1999년 식약청으로부터 허가를 받아 설립될 때까지 보건복지부 허가를 받은 '의료용구수입자(공급자)협의회'는 초대 회장으로 서정환 테크노랜드 회장이 이끌어 갔다.

대외적으로 수입사를 대변할 창구 마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보건복지부는 새롭게 출범하는 협의회에 대해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의료기기산업은 복지부 의무국 시설장비과에서 담당했다. 협의회에서는 복지부를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과정이 오고 가면서 마침 정부 차원에서 정립이 필요한 시점에서 우여곡절 끝에 인정받게 된다.

또 한편으로 제조사 단체인 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과의 통합논의가 제시됐다. 이후 2002년 김서곤 솔고바이오메디칼 회장이 협회 회장과 조합 이사장을 겸임하는 통합회장으로서 역임하게 된다.

안 회장은 "초창기 서정환 테크노랜드 회장, 백대기 반도메디칼 회장, 이성희 전협회 회장(메디언스 회장), 채수경 경원메디칼 대표이사 등 많은 업계 대표들이 뜻이 모여 협의회를 거쳐 협회가 설립됐다"며 "협회 설립이 완료된 시점에서 내 역할은 다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의료기기업계의 이익대변할 단체가 양분돼 있었기에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창립은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의료기기의 유통 공급질서 확립, 국민보건향상 및 의료기기산업의 발전을 위해 대표단체라는 결실이 생겼고, 회원 상호간의 긴밀한 협조를 통한 권익보호로 공동복리 증진에 힘쓸 수 있는 토대가 됐다.

의료기기산업이 성장하고 협회 위상이 높아져 보람을 느낀다는 안병산 회장은 협회가 좀 더 회원사와 업계의 권익대변에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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