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인 지음 / 문학동네

만약은 없다 (응급의학과 의사가 쓴 죽음과 삶, 그 경계의 기록)
남궁인 지음 / 문학동네 

죽고자 했던 사람들은 예정된 택배물처럼 도착했다. 하루에 대여섯 명씩, 1년이면 1천여 명쯤. 나처럼 죽으려고 했던 사람은 머리카락 수만큼 많았다. 그들의 의식이 남아 있을 때면 나는 경험자로서 차트가 아닌 그들의 손끝을 슬며시 잡아보고는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위로나 격려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나는 지나치게 많은 환자를 보는데다 장기간의 치료와 무관한 응급의학과 의사였다. 업무의 몇 분쯤을 더 할애하는 것은 자기 위안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그 일’을 대부분 인생의 모난 자리로 여겼다. 자신의 삶에서 언급하고 싶지 않거나, 잠시 찾아온 삐뚤어진 상태로 기억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곧 가면을 쓰고 자신의 원래 삶으로 돌아가버렸다. 나는 육체적인 과로에 시달리는, 섣부른 경험자나 상담자, 그 이상이 아니었다. 혼란스러운 계절이었다.
(…) 일은 점점 익숙해졌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너무나 많은 죽음과 비극에 감정은 아무것도 벨수 없는 칼처럼 둔탁해졌다. 하지만, 가슴속에서 무엇인가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무뎌지고 있다는 죄책감이었다. 마음속이 응어리져 풀어지지 않는 매듭으로 엉켜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한두 편씩 기록해갔다. 내가 목격한 사실이 있었고, 그 사실을 극적으로 구성하거나 가공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래서 여기 있는 글들은 사실과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너무나 많은 비극을 목격했고, 그것을 기반으로 이 글들을 적어냈으며, 그 과정에서 많은 시간 고민해야 했고, 자주 울었으며, 결국에는 쓰기 위해 나의 일부분을 헐어내야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그 무엇도 잊지 않기 위해 이 글들을 써내려갔다는 것도. 이제부터 여러분은, 죽으려 했던 자가 죽음 안에서 뛰어다니는 기록을 보게 될 것이다.” ---「서문」중에서

옆집의 나르시시스트 (집, 사무실, 침실, 우리 주변에 숨어 있는 괴물 이해하기)
제프리 클루거 지음 / 구계원 옮김 / 문학동네

나르시시즘은 도수가 높은 술처럼 어울리는 장소와 목적이 있으며, 우리를 긴장시키고 용기를 북돋우며 놀라울 정도로 원시적인 기쁨을 준다. 그러나 지나치게 탐닉하면 후회감이 몰려오고 몸이 쑤시는데다 ‘적당히 자제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다양한 종류의 술이 없다면 세상 살아가는 즐거움이 하나 줄어들 테고, 마찬가지로 인간 심리에 여러 가지 요소가 없다면 허전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양쪽 모두 휘발성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부글부글 거품을 내며 생기를 띨 수도 있고, 타버리거나 델 수도 있다. 그 차이는 다른 많은 것과 마찬가지로 통제하는 방법을 아느냐에 달려 있다. --- p.391~392

자신감, 야망, 매력, 자기애는 전부 인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복잡한 교향곡에서 꼭 필요한 화음들이다. 제대로 연주하기만 한다면 이러한 화음은 풍부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곡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제대로 연주하지 못하면 그저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자아의 북소리에 지나게 않게 된다. --- p.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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