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확한 기준 적용한 별도산정불가 제품 재정비 기대

■ 치료재료와 별도산정불가 제도

▲ 서 화 석 
보스톤사이언티픽코리아
차장

‘별도산정불가’의 의료선진국 
‘소리없는 아우성’처럼 때로는 서로 모순된 두 단어 사이가 생각지 않게 보다 더 강한 의미가 전달된다. 21만명(실환자 기준)이라는 숫자는 작년 한해 동안 국내를 찾은 외국인 환자의 숫자이다. 정부는 최근 몇 년간 의료서비스 선진화라는 이름아래 의료관광을 국정과제로 선정하고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병원들은 서로 앞 다퉈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기 위한 경쟁에 뛰어 들고 있다. 연일 쏟아지는 보도자료에서는 우리의 우수한 의료 시스템을 중동에 수출하는 단계에 와 있는 듯하다. 그런데 과연 정말로 우리의 의료서비스는 선진국의 문턱에 와 있는 것일까? 

의료선진국이라는 빛나는 단어로 포장돼 있지만 사실 열악한 임상현장에서는 많은 고민과 한숨이 함께 하고 있다. 낮은 의사 행위료와 보험가격의 그늘 속에서 의료진과 산업계가 의료선진국을 열망하는 대한민국을 떠받치고 있다. 그리고 그 치열함의 한 가운데에 별도산정불가라는 이슈가 놓여 있다.

‘별도산정불가’란?
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인 ‘별도산정불가’는 오랫동안 의료산업계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되는 단골손님이다. 별도산정불가란 의사가 환자 진료시 사용되는 치료재료 등이 이미 의사의 행위에 포함되어 별도로 환자나 보험공단에 청구할 수 없는 범주를 일컫는 말이다. 단순히 생각하면 이미 행위료에 포함돼 있어 의사는 굳이 비용을 신청할 필요가 없고 환자도 비용을 별도로 지불할 필요가 없다고 이해기 쉽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다. 배보다 배꼽이 클 수도 있기 때문이다. 10만원 대의 치료재료가 5만원의 행위에 들어가 있을 수도 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단순히 5만원대 행위료에 사용되는 10만원대 치료재료를 만들어내는 제조사가 비난 받아야 할까? 이 논의를 환자의 안전과 선택권의 측면에서 먼저 이야기해 보자.

환자의 안전과 선택권 보호 
우리는 사회주의 성격이 강한 전국민 단일 건강보험체계를 운영해 오고 있다. 지난 89년 전국민 단일 보험체계가 성립된지 벌써 25년이 흘렀다. 환자가 병원을 방문하는 것은 용이해졌고 병원 종별에 따라 대기 시간이 다소 늘어나기는 했지만 국민 대다수가 만족하는 시스템에 가까워 진 듯하다. 특히 국내 의료서비스에 대한 안도감과 만족감은 미국과 같은 사보험 주도의 의료시장에 대한 두려움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높다. 

그러나 저렴한 치료비용에 대한 환자의 만족도가 크면 클수록 상대적으로 다른 한편의 만족도는 작아질 가능성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병원은 건강보험공단과 환자에게 치료에 사용된 치료재료에 대한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행위료에 포함돼 있다고 생각하는 치료재료 중에는 그 누구에게도 청구할 수 없는 별도산정불가라는 비용이 숨어있다. 건강보험공단이 이미 해당 행위료에 치료재료 비용이 포함돼 있고, 환자에게 청구하는 것은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고민의 몫은 의사에게 돌아간다. 때때로 그들은 생명을 다루는 의사로서의 사명감과 적자운영을 피하기 위한 경영자로서의 책임감 사이에서 고민한다. 이런 고민들은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치료재료들이 보다 개선됨과 동시에 감염방지를 위해 일회용 제품으로 변화되면서 더욱 심각해진다. 아래에 있는 두 가지 예시를 통해 그 고민을 함께 해 보자. 

골수생검 천자용 니들 
일반적인 골수천자 검사비는 3만원이다. 그러나 골수천자를 위해 사용되는 바늘의 비용은 47,500원이다. 한번 사용할 때마다 병원은 17,500원을 환자에게 기부하는 셈이 된다. 바늘을 재사용할 경우 무뎌진 바늘 끝으로 동통이 유발되며 천자 부위 확장으로 감염 등 합병증이 예상된다. 재사용으로 인한 문제가 눈에 뻔히 보인다고 재사용을 하는 의사를 탓하며, 그렇다고 매번 새로운 제품을 구입해 환자에게 골수 천자 검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다행히 이 문제는 2010년 임의비급여 문제로 사회적 이슈가 돼 해결된 경우이다. 그러나 유사한 문제는 되풀이 될 수 있다. 

소화기 내시경 생검용 포셉
위나 대장 내시경을 받을 때 이상이 있는 조직을 채취하는 검사를 한다. 이럴 때 특정 조직의 채취를 위해 생검용 포셉이 사용 된다. 조직을 채취하는 행위에 대한 비용은 해당 내시경 검사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약 8,000원 선이다. 그러나 이때 사용하는 생검용 포셉은 보도자료에 따르면 23,000원이라고 한다. 당연히 일회용 포셉을 재사용 할 경우 감염의 위험이 높지만 재사용 문제는 빈번히 발생한다. 위의 사례와 비슷하게 닮아 있는 포셉의 문제는 지난해 정기 국정감사에서 지적됐다.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비슷한 문제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이슈나 문제가 되는 경우에는 여론의 수면으로 드러나 관심을 받는다. 그리고 회색영역에서 다시 비용청구가 가능한 영역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아직도 무수히 많은 제2의 니들과 포셉 사례들이 의료현장에는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문제가 되지 않는 제품에게는 차례가 돌아오지 않으며 의사들의 고민은 계속된다. 과연 이 제품을 사용해도 되는가에 대한 고민.

위장관내 출혈성 궤양 지혈 클립
소화기 내시경 관련 제품 중에는 위장관내 출혈성 궤양의 지혈에 사용되는 클립이라는 치료재료가 있다. 클립은 오랜 기간 동안 궤양의 출혈에 효과적이며 안전한 방법으로 인식돼 사용해 왔고, 수많은 논문을 통해서 이미 안정성을 입증된 바 있다. 그러나 이 제품 역시 행위료에 포함돼 있어 병원의 입장에서는 환자에게 사용하면 할수록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더구나 현재 기능이 개선된 일회용 제품들이 해외에서는 많이 사용되고 있으나 국내에서의 사용은 감히 생각조차 하기 힘들다. 의사는 위장관내 출혈이 있는 환자에게 클립을 사용해야만 한다.

그러나 병원에 손해를 끼치니 미안한 마음을 갖고 사용해야 할 것이다. 의사는 환자에게 돈을 받으면 불법이고 이 비용을 공단에서도 받을 수가 없다. 설령 환자가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 법에서는 돈을 받을 수 없으며 병원의 비용으로만 지급해야만 한다. 이래도 과연 클립을 아끼려는 의사를 탓하며 저렴한 비용에 치료되었다고 환자가 만족할 수 있을까?

치료재료와 의료기기산업 발전
지난해 11월 국회에서는 ‘의료기기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 토론회’가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수시장 없이는 해외시장 진출은 불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이 토론회에서도 어김없이 별도산정불가에 대한 논의는 계속됐다. 그 가운데 정부과제로 100억원이 넘는 투자를 받아 6년 노력 끝에 개발한 3D 복강경이 2년간 한 대 판매된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새로 개발된 3D 복강경 제품에 추가 보험급여는 없었고 환자에게 추가로 청구하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어느 제품도 하루 아침에 획기적인 제품이 나오기란 쉽지 않다.

작은 기능 개선을 통해 보다 효율적인 제품이 등장하고 이를 기반으로 더 우수한 제품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기능의 개선이 있다면 그 노력을 인정해야만 그 보다 더 나은 제품이 반드시 나올 것이다. 

의료기기 업체들의 염원이었던 별도산정불가에 대한 논의도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를 넘기고 있다. 정말로 의료기기 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려면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건강보험 재정 절약을 통해 오늘을 준비할지 아니면 수출 주도형 산업육성을 위해 내일을 준비할지에 대한 결정을 해야 한다. 

2015 별도산정기준 마련 기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치료재료관리실이 생긴지 이제 1년이 돼 간다. 그동안 업체들은 치료재료의 문제에 대해 하소연 할 곳조차 없었던 차에 치료재료관리실은 그 존재로써 큰 위로가 됐다. 더불어 그동안 산적했던 제도적 문제들을 하나둘씩 풀기 시작한다니 반갑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별도산정불가 치료재료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했고 현재 어떤 제품들이 실제로 별도산정불가로 있는지에 대한 조사도 이미 모두 마쳤다. 2015년에는 그동안 별도산정불가에 있던 제품들이 분명한 기준에 의해 재정비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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