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 자유무역의 역사: ⑧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의 역사

[산업통상자원부 함께하는 FTA_2014.09월 Vol.28]

동남아시아에 속한 개별 국가들의 경제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이들 국가들의 협력기구인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은 제법 큰 시장 규모를 자랑한다. 동남아시아 10개 국으로 구성된 ASEAN은 총인구 6억 명, 총GDP 2조 달러 이상의 시장규모와 석유, 천연가스 등 주요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잠재력이 큰 시장이다.

▲ ASEAN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경험하면서 동아시아 국가들과 협력의 범위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사진은 올해 5월 3일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ASEAN+3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적으로 냉전체제가 형성되면서 인도차이나 반도에는 공산화와 안보 위협이 증대됐다. 또한 동남아시아 역내 국가들 간에도 영토와 민족 문제를 둘러싼 소모적 분쟁과 마찰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따라 안보적 위협에 공동으로 대응하고 지역의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기 위한 지역협력체의 필요성이 부각됐다. 마침내 1967년 8월 8일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5개국은 ‘방콕선언(Bangkok Declaration)’을 통해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을 출범시켰다. 당시 출범 목표는 안보 위협에 공동으로 대처하고, 강대국들의 주도권 쟁탈전에 대해 중립을 유지하며, 역내 국가들의 평화와 경제적 번영을 모색한다는 것이었다. 대외적으로는 이처럼 정치적 중립과 경제협력을 표방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안보협력체의 성격이 매우 강했다.

1975년 마침내 베트남이 공산화되자, 1976년 2월 ASEAN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아세안화합선언(발리선언)’과 ‘동남아우호협력조약’을 채택했다. 또한 이듬해인 1977년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에서 개최된 정상회담에서 ASEAN 협력의 장애요인을 극복하고 ASEAN의 단결과 협력을 강화해 나갈 것을 다짐했다.

1967년 ‘방콕선언’ 통해 5개 회원국 출범

 

1980년대 중반부터 국제 정세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1985년 소련이 개혁과 개방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하면서 동남아 지역에서도 점진적으로 안보 위협이 약화되고 상대적으로 경제협력의 필요성이 강조됐다. 1985년 베트남은 도이모이(Doi Moi: 쇄신) 정책을 추진하면서 점진적으로 시장경제체제로 전환을 모색하게 됐고, 1988년 태국은 ‘전장에서 시장으로(From Battlefield to Market)를 내걸고 인도차이나 공산권 국가와의 관계 개선과 경제협력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결국 동남아 지역에서 안보적 위협요인의 감소는 경제통합체 창설을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1992년 1월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ASEAN 정상회담에서, ASEAN 정상들은 경제협력을 실질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로서 아세안자유무역지대(AFTA: ASEAN Free Trade Area)를 창설한다는 내용의 ‘싱가포르 선언’을 채택했다. 이 선언의 핵심 내용은 2008년까지 역내 관세를 점진적으로 인하하고 회원국 간 비관세 장벽을 단계적으로 제거하여 완전한 자유무역지대를 건설한다는 것이었다. 한편, 이와 같은 경제협력 강화 움직임은 역으로 안보협력을 위한 새로운 논의를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됐는데, 이 정상회담에서 역내 정치안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지역 안보포럼(ARF: ASEAN Regional Forum)을 창설키로 합의했다. 또한 1995년 12월 방콕 정상회담에서는 WTO 협정에 맞춰 역내 서비스 산업을 개방하고 지적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협정에 합의했다. 아울러 역내 국가 간의 통관절차 간소화, 비관세 장벽 제거 등을 위해 더욱 박차를 가하기로 함으로써 ‘아세안자유무역지대 플러스(AFTA+)’의 추진에 합의했다.

ASEAN의 미래비전은 2003년 ‘발리정상회담’과 2007년 ‘세부정상회담’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이들 정상회의에서 ASEAN은 개방적 지역주의(Open Regionalism)를 표방하며 향후 EU와 같은 공동체를 조성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보다 강력한 유대관계를 형성해 나가기로 했다. 2007년 ‘세부 정상회의’에서는 2015년까지 EU와 같은 ASEAN 공동체를 조성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2단계에 걸쳐 AFTA를 설립하기로 했다. 즉, 싱가포르, 브루나이 등 경제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6개국은 2010년까지 먼저 경제통합을 달성하고, 나머지 국가들은 이후 경제통합에 참여하기로 했다.

ASEAN은 이처럼 내부적 결속을 다져 나감과 동시에 외연적 확장도 추구해 오고 있다. 1984년 브루나이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6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한 후, 1995년 베트남, 1997년 라오스와 미얀마, 그리고 1999년 캄보디아가 합류함으로써 현재와 같은 ‘ASEAN 10’을 구축하게 됐다. 특히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경험하면서 동남아뿐만 아니라 한·중·일 3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의 중요성을 깨닫고 협력의 범위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지난 2011년 8월과 11월에 열린 ASEAN 정상회의에서 ASEAN 정상들은 ASEAN 10개국과 한국,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인도를 포함하는 역내포괄적동반자협정(RCEP)을 추진키로 합의하고, 이를 관련국들에 제안했다. 마침내 2012년 11월 개최된 ASEAN+3 통상장관회의에서 RCEP 협상 개시가 선언됐고, 오는 2015년 말 협상 타결을 목표로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경제통합은 곧 정치·외교적 협력’ 입증
ASEAN의 경제통합 배경과 진전 과정을 살펴보면, 경제통합체가 반드시 경제적 발전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경제통합은 경제적인 목적 외에도 대외 안보 위협으로부터의 공동 대응, 역내 국가 간 갈등과 마찰의 해소 등 여러 목적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또한 ASEAN의 통합과정은 안보적 목적을 위한 역내국간 협력이 자연스럽게 경제적 통합 과정을 촉진하고, 거꾸로 경제적 협력 강화는 다시 정치·외교적 협력 수준을 끌어올린다는 점을 보여준다. 과거 식민 역사의 잔재와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지 못하고 항상 불안요소를 안고 있는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FTA 정책에 있어서 특히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의료기기뉴스라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