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 자유무역의 역사: ④한국경제와 WTO

[산업통상자원부 함께하는 FTA_2014.04월 Vol.23]

세계무역기구(WTO)는 무역 자유화의 일등 공신이다. 그런데 WTO 하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1990년대 초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막바지에 농업 개방을 반대하는 국내 농민들의 시위가 봇물처럼 터졌고, 1999년에는 전 세계 비정부기구(NGO)들이 시애틀에서 WTO의 뉴라운드 개막을 저지하기 위해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도 했는데, 이러한 사건들이 영향을 미친것 같다. 그러나 6.25 전쟁 이후 최빈국으로 몰락하던 우리나라가 오늘날 이처럼 잘 살게 된 것은 무엇보다 WTO의 혜택이 크다.

 

우리나라는 1950년대 초 겪었던 민족상잔의 전쟁으로 인해 1960년대까지 세계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 측에 속했다. 지금은 상상하기도 어렵지만, 당시 우리나라 경제는 최빈국인 방글라데시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WTO의 전신인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가입하면서 수출주도형 성장전략과 대외개방정책을 효과적으로 이용함으로써 괄목할만한 성장을 일궈냈다. 1996년 세계은행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보고 ’동아시아의 기적(East Asian Miracle)'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지금 우리나라가 스마트폰이나 자동차와 같은 첨단 제품을 전 세계 무대에 팔면서 명실공히 세계 10대 통상대국으로 우뚝 서게 되기까지 무엇보다 WTO가 큰 힘이 됐던 것이다.

01. ‘한강의 기적’엔 GATT·WTO 역할 컸다
우리나라는 1967년에 WTO의 모체인 GATT에 처음 가입했다. 이후 1995년 WTO 탄생과 더불어 WTO 회원국이 됐다. WTO는 회원국 간 무역자유화에 관한 협상의 장을 제공하고, 이러한 협상 결과로 얻어진 협정의 이행을 위한 틀을 제공하며, 협정 이행과 관련된 회원국 간 분쟁 해결을 위한 절차와 기구를 제공한다. 협정내용은 모든 국가들에게 동등하게 적용되며, 협정을 위반하면 잘 사는 나라든 못 사는 나라든 상관없이 어느 나라나 제소할 수 있으며, 모든 회원국은 분쟁해결절차에 따라 분쟁을 해결한다. 약소국은 결과적으로 협상력이 증가하게 된다. 이유는 WTO와 같은 다자체제가 없다면 강대국들은 그들의 의사를 힘이 약한 무역상대국에게 강요하기가 더 쉬울 것이고 약소국은 강대국과 개별적으로 협상할 수밖에 없어 강대국의 압력에 저항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수출을 많이 하게 되면서 선진국들과 다양한 무역 분쟁을 겪었으나, WTO 분쟁해결 절차를 이용해서 합리적으로 해결해왔다. 일례로 우리 조선엽계와 경쟁하는 자국 조선사에 대해서만 6%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EC(유럽공동체)의 조치가 WTO 협정 위반이라고 보고, 지난 2003년 이를 WTO에 제소했다. 패널은 2005년 2월 EC 측의 규정이 WTO에 위배된다고 판정했고, 우리는 이 분쟁에서 승소함으로써 장기간 계속된 EC와의 조선 분쟁을 끝낼 수 있었다. 이처럼 WTO는 회원국들의 일방주의 억제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 기업들에게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인 무역환경을 제공하는데 도움이 됐다.

이에 따라 우리 기업들은 수출을 괄목할 만하게 증가시킬 수 있었다. 내수 시장이 작은 우리 기업들에게 거대한 세계시장에 대한 접근은 가장 큰 선물이다. 기업들이 수출을 늘리고 국제 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워 나감에 따라, 초기에 농업이 대부분을 차지했던 우리 산업도 이후 경공업, 중화학공업, 첨단산업 등으로 계속해서 발전해 나갈 수 있었다. 수출이 증가하면서 규모가 커진 기업들은 더 많은 인력을 고용했고 이에 따라 가계 소득과 국민 소득도 함께 늘어 갔다. 한편으로는 국내 시장을 개방하면서 생산에 사용되는 값싼 수입원자재 덕분에 생산비용과 가격이 내려가게 됐다. 또한 완성품을 구입하는 소비자만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이 아니라, 국산품 생산에 사용되는 원료, 부품, 생산 장비에 대한 선택권도 다양해지면서 기업들의 경쟁력도 날로 증가할 수 있었다.

02. 국내 산업 구조조정의 지렛대 역할도
무역은 분명히 소득을 증가시키고 경제적 번영을 가져다줬지만, 수입품과의 경쟁으로 피해를 입게 되는 산업도 있었다. 이러한 부문에 속한 기업이나 근로자들은 좀 더 성장성이 큰 산업으로 옮겨가야 하는데, 단기적으로는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가 우려되는 산업은 WTO의 무역자유화에 대해 반대하고 보호주의를 주장하게 되는데, 이익집단이 정치적 영향력을 지나치게 행사할 때 경제전체에 비효율과 왜곡현상이 발생한다. 이 때 정부는 피해산업에 대한 지원정책과 더불어, 보호를 요구하는 이익집단들에게 국가경제 전체적인 입장에서 WTO 규정 이행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이익집단의 압력을 극복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개방을 통한 성장을 도모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익집단의 압력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측면에 기인하는바가 크다.

한마디로 우리나라는 WTO 가입을 통해 세계시장에 진출함으로써 좁은 국내시장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고, 내부적으로는 비효율적인 생산 활동, 비합리적인 관행과 제도를 개선함으로써 경제의 체질을 강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WTO가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지금과 같은 경제발전 단계에 도달하기까지 훨씬 더 많은 세월이 소요됐을 것이며,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기회비용을 치러야 했을 것이다.

수출 산업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둬 온 우리나라는 앞으로 서비스 등 내수 산업을 키워야 하는 당면 과제를 안고 있는데, 그간의 경험은 시사 하는 바가 크다. 내수를 실질적으로 확대하려면 정부의 선언만으로는 부족하며, 서비스 분야에서 기득권을 향유하는 집단의 요구를 극복할 수 있는 강력한 추진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WTO 시장개방 협상을 지렛대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양적·질적 경제발전을 이어 나가기 위해서는 WTO를 동반자 삼아 함께 가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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