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적 치료재료 별도산정 기준·정액수가제도 개선·예측가능한 요양급여 필요

■ 치료재료 건강보험제도 개선 향후 과제

“치료재료의 정의, 이제 명확히 규정해야 할 때”
포괄적 치료재료 별도산정 기준·정액수가제도
개선·예측가능한 요양급여 필요

▲ 서 화 석
보스톤사이언티픽코리아
부장

“라면 가게 주인이 라면을 끓이는데 더 맛있게 끓이려고 파와 달걀을 추가로 넣었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넣지 않은 라면과 똑같은 가격으로 손님에게 돈을 받으라고 한다면 이게 말이 될까요?”얼마 전 열렸던 보험정책포럼에서 의사 선생님 강의 중에서 들었던 이야기이다. 이 예시는 임상현장에서 별도로 보험청구가 불가한 치료재료에 빗대어 한 이야기였다. 실제로는 ‘파와 달걀’뿐이 아니라 심지어 ‘라면’이 바뀌어도 비용은 변하지 않는 사례들도 부지기수다.

지난 11월 4일 보건복지부는 이 오래 묶은 난제에 해답을 제시했다. 감염예방 및 환자 안전을 위한 일부 일회용 치료재료에 대한 별도보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별도 비용을 인정하지 않아 현장에서 사용이 어려웠던 치료재료에 대해 별도보상을 하겠다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우선 이런 결정을 환영하며 반긴다. 그리고 힘겨운 과정을 거쳐 감염 예방 및 환자 안전을 위한 일회용 치료재료를 보상하기로 결정한 만큼 빠른 시간내에 별도보상이 진행돼 임상현장에서 불편 없이 안전하게 환자에게 사용되기를 기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치료재료에 있어 다양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이번 로드맵에 포함되지 못했지만 임상적으로 우수하고 환자에게 필요한 치료재료들이 별도보상을 기다리고 있다.

또한 정액수가 제도개선과 요양급여 결정과정의 지연은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몇 가지 문제들이었다. 이를 하나하나 논의해 보고자 한다.

포괄적 치료재료 별도산정 가이드라인

지난해 복지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52개 품목을 각각 감염예방과 환자안전 품목으로 분류하고 우선순위(1~5순위)를 두어 2018년까지 3단계에 걸쳐 별도보상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우선순위 품목 리스트를 살펴보면 ‘왜’해당 품목이 1순위가 됐는지는 이해하기 힘들다. 또한 다양한 제품 중에서 ‘왜’해당 제품이 선정됐는지도 뚜렷한 근거가 눈에 띄지 않는다. 물론 제품별로 전문가와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했을 것으로 생각하나 이를 뒷받침하고 우선순위를 정한 명확하고 문서화된 기준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이제 새롭게 출시된 치료재료가 신의료기술을 만들어내고 하루가 멀다고 기능이 개선된 치료재료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다. 문서화된 기준이 없다면 산업계는 새로운 제품을 시장에 출시할 때마다 해당 제품이 별도 보상되는 치료재료인지 아닌지 여부를 깊게 고민하게 될 것이다. 의료기기, 의약외품, 인체조직은 관련법령에 따라 법적정의가 규정되는 반면 치료재료는 국민건강보험법령상 이에 접합한 법적 정의가 부재하다.

따라서 별도산정 되는 치료재료에 대한 정의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매번 한정된 제품들을 모아 골라내고 그 안에서 우선순위를 두는 방식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반면에 모든 치료재료에 포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 별도산정 되는 제품을 분리해낸다면 보다 객관적이고 투명성 있는 제도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정액수가 제도개선 필요

별도산정 기준 개선과 함께 산업계에서 오랫동안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 정액수가 보상제도이다. 정액수가 품목은 편의상 중분류별 청구 순위를 기준으로 ‘내시경화 시술용기구’, ‘관절경하 수술시 사용하는 치료재료’, 그리고 기타 여러 재료로 구분할 수 있다. 내시경화 시술용 기구는 일회용과 재사용 제품이 혼재돼 있어 개별 단위 보상이 어려운 경우였다. 관절경하 수술 시 사용하는 치료재료는 관련 시술에 여러 가지 치료재료가 함께 사용돼 묶음 단위로 제품 가격을 설정한 경우이다. 마지막으로 기타 치료재료에는 복강경·흉강경하 치료재료, Burr나 Saw 등 절삭기류, 비뇨기과 제품들이 포함돼 있다.

2008년 보장성 강화 정책으로 인해 정액수가 품목 수는 5개에서 현재 36개로 늘어났다. 하지만 가격에 대한 불만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해당 제품군에 기능이 개선된 제품이 출시해도 2008년도 당시에 정해진 가격 이외에는 추가 가격을 받을 기전이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 초(楚)나라의 이야기를 담은 책인 <초사(楚辭)>에 ‘석계이등천(釋階而登天)’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사다리를 버리고 하늘에 오르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을 비유한 말이다. 개선된 제품에 제값을 주지도 않으면서 혁신적 제품을 만들라고 하는 것은 사다리도 없이 하늘에 오르라는 것과 결코 다르지 않다. 기능의 개선이 있다면 그 노력을 인정해야만 그보다 더 나은 제품이 반드시 나올 것이다. 대한민국이 꿈꾸는 의료기기 강국도 합리적 보상없이는 이룰 수 없다.

또 다른 문제는 환자 안전과 감염에 대한 우려이다. 작년 10월 국정감사에서는 정액수가에 포함된 내시경 의료기기가 무리한 재사용을 유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이유로 일회용과 재사용이 혼재돼 있는 내시경 의료기기는 일회용과 재사용 제품을 동일한 코드로 관리하다 보니 의료기기를 무제한 사용하거나 일회용을 재사용해도 적발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병원 내의 환자 안전은 무엇보다 우선시 될 수 없으며 아무리 작은 부분도 소홀히 할 수 없음은 모두가 동의하는 명백한 사실이다. 하루라도 빨리 제도 개선을 통해 더욱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의료기기가 관리되기를 기대한다.

예측성 있는 치료재료 요양급여 결정

얼마 전 행위 치료재료 요양급여 결정을 150일에서 100일로 단축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기사가 있었다. 반가운 소식이긴 하나 실제로 실현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사실 150일 이내에 치료재료 급여가 결정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기존 제품과 동일가를 받기 위한 약식검토는 빠르게 급여가 결정된다. 하지만 산업계나 환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약식검토보다는 정밀검토가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정밀검토에 해당하는 제품의 경우 급여결정을 언제 받을 수 있을지 현재로써는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 특히 신의료기술로 고시돼 행위결정 신청부터 진행된다면 형국은 더욱 안개 속으로 빠져든다. 개인적 경험으로 행위결정 신청에서부터 최종 치료재료 급여결정까지 2년 10개월이 걸린 제품도 있다. 신의료기술을 위해 검토한 기간을 합치면 총 4년 가까이 된다.

제약산업과 달리 의료기기산업은 다양한 제품을 소량생산하며 새로운 제품의 출시주기도 빨라졌다. 만약 신의료기술을 도입하고 보험 급여를 받기 위해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면 해당기술이 꼭 필요했던 환자에게도 답답한 일이었을 것이다.

특히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이제는 기존 기술을 뛰어넘는, 환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새로운 치료재료가 등장한다. 따라서 빠른 치료재료의 도입과 보험 급여 결정은 환자의 생명과도 직결 될 수 있다. 또한 급여결정 시기를 예측하는 것은 보다 정확하고 안전한 제품을 환자에게 제공할 뿐만 아니라 기업에 있어 생존과도 직결된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결론

매년 의료기기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토론회가 열리고 수많은 정부 정책들이 쏟아진다. 그러나 의료기기와 관련된 기존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사상누각이 될 수도 있다. 고조 시대에 신무제가 그 아들들의 지혜를 시험해 보고자 얽힌 매듭을 풀어보게 하였다.

모두 어려운 매듭을 풀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한 명의 아들이 칼을 뽑아 단칼에 매듭을 잘라버렸다. 그리고는 “얽힌 매듭은 모름지기 베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금이야말로 복잡해 보이는 문제를 위해 쾌도난마의 지혜와 대담함을 빌릴 때이지 않을까 한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의료기기뉴스라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