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경우 칼럼-의료기기는 일상이다(3)

[연재 칼럼 소개] 현대인에게 ‘의료’는 일상이다. 대중문화는 의학과 질병, 치료, 건강 등을 다양하게 반영하고 있다. 이 연재는 대중문화에 나타난 다양한 사례를 통해 대중들이 어떻게 의료를 바라보고 소비하는지 살펴본다.

‘렛미인(Let 美人)’시즌 4가 지난 9월11일 방송으로 막을 내렸다.‘렛미인’은 2011년 12월 스토리온(Story on) 채널에서 처음 방송을 시작할 때부터 논란이 있었다. 프로그램 형식은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지원자들의 인생을 바꿔주는‘메이크 오버 쇼’이다. 제작진 역시‘인생 대반전’이라는 홍보문구를 통해 성형이라는 현대의료기술로 개인의 외모뿐만 아니라 삶이 바뀐다는 것을 내세웠다.

프로그램은 성형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뿐만 아니라 출연자들과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전달했다. 선발된 지원자들은 단순히 예뻐지고 싶다는 차원을 넘어서는 다른 무엇이 필요했다. 그것은 지원자의 외모뿐만 아니라 실제 환경 등의 현실이 열악해야 했다. 예를 들면 외모 때문에 외출을 하지 못했다는 극단적 상황이나 얼굴의 일부분을 계속 가리고 다닐 수밖에 없는 상황, 혹은 여름에도 반팔이나 치마를 입을 수 없는 상태, 외모의 문제로 면접에서 계속 떨어졌다는 등 남들보다 심각한 상태여야 하는 것이다.

출연자들은 자신의 현재의 모습을 공개한다. 이를 통해 다양한 성형외과 전문의들이 각자의 전문성을 살려 출연자를 어떻게 수술할 것인지를 상의하고 결정한다. 이러한 과정은 모두 방송을 통해 공개되고, 수술 후에 일정한 기간이 지난 뒤 변화된 모습을 프로그램에서 공개하게 된다. 그 순간은 MC와 방청객, 시청자들이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다. 출연자의 새로운 모습이 공개되는 순간 충격과 감동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그것은 '혁명'이라고밖에 할 수 없을 정도이다. 무대에 등장한 출연자의 모습에서 이전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MC는 출연자가 맞는지 다시 확인함으로써 변신의 강도를 알려준다. 그리고 출연자의 힘든 과거와 비례하여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 그런데 출연자의 모습에 대한 ‘before’와 ‘after’의 비교는 시청자들에게 충격과 감동을 넘어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성형수술’로 지칭되는 현대 의료기술에 대한 경외감이다. 성형외과 의사는 단순히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라는 개념과 범주를 뛰어넘어, ‘기적’이라 부를 수 있는 행위를 수행하는 신의 영역에 다가가 있다. 시청자를 비롯한 대중이 성형수술을 욕망하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자연의 섭리라고 할 수 있는 유전학적 관점을 따르는, 즉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상태로 살아가지 않으려는 것이다. 이제는 ‘생긴 대로’ 살아갈 필요가 없다. ‘생긴 대로 산다’는 것은 과거에 외모를 바꿀 수 없을 때에 통했던 이야기이다. 얼마든지 새로운 얼굴과 외모를 선택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사회적 편견 또한 상당히 완화되었다. 오직 문제가 되는 것은 천문학적인 수술 비용뿐이다.

이제 논란은 좀 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차원에서 발생한다. 얼굴을 새롭게 바꾸는 성형이라는 행위가 과연 치료행위인가, 아니면 미용행위인가 하는 점이다. 흔히 수술과 시술의 차이를 강조한다.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치료와 미용이라는 구분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치료행위는 곧 의료행위라고 보는 것이다. 치료나 의료는 병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자신의 선택적 행위보다는 외적 요인에 의한 불가피한 결과이다. 미용행위는 지금보다 나은 자신을 위해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치료와 미용을 구분하는 경계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렛미인> 프로그램은 이와 관련된 사회적 담론을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셈이다. 연애와 취업, 결혼 등 외모를 통해 형성되는 ‘매력’을 중요한 자본으로 삼아야 하는 현대사회에서, 성형은 다양한 선택 가운데 하나가 되었을 뿐이다. 더 중요한 것은 성형을 통해 얻게 되는 물적 자산을 넘어 개인 스스로가 느끼는 내적 행복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성형으로 얼굴과 외모를 바꾼 이들은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성형 자체에 대한 냉소와 비난이 아니라 좀 더 실질적인 논의로 이어가야 할 것이다. 

[필자 소개]

권경우
문화평론가

문화평론가. 여러 대학에서 대중문화와 철학을 강의하고, 다양한 매체에 문화비평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지은 책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문화운동>(로크미디어, 2007)이 있으며, 함께 지은 책으로 <아이돌: H.O.T.에서 소녀시대까지>(이매진, 2011), <웃기는 레볼루션: ‘무한도전’에 대한 몇 가지 진지한 이야기들>(텍스트, 2012) 등이 있다.

nomad70@daum.net

저작권자 © 의료기기뉴스라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